단지 비누 거품일 뿐…아니, 단지 모히칸일 뿐

by 김대일

우리 점방 유일한 모히칸 헤어스타일 고수자는 개업 초기부터 변심없이 드나들면서 그가 '형님'으로 부르는 이들 두서너 명까지 머리 깎게 데려오는 정성으로 추가 매상까지 올려 주는 참으로 바람직한 단골이다. 여기서 잠깐, 모히칸 헤어스타일이 무엇인지 설명을 덧붙여야 그 단골의 외양을 그려 볼 수 있고 이미지가 그려져야지 내가 이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히칸 또는 모호크 스타일은 일명 닭벼슬 머리라고도 불리는데 머리 좌우(또는 그 중 한쪽)를 바싹 깎거나 삭발을 하고 가운데 부분만 길러 언뜻 닭벼슬처럼 보이는 헤어 스타일이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악역이 주로 하고 다니는 헤어스타일이라고 위키백과는 친절하게 부연 설명한다.

<1박2일>에 나오는 딘딘하고 비슷한 작은 체구이지만 왠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어울릴 법하게 골격이 다부지고 특히 옆으로 째진 눈매로 본의 아니게 인상이 매섭게 보이는 단골은 점방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첫인상과는 달리 공손한 말투와 정제된 태도를 시종일관 견지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하늘을 비행하면서 길 잃은 설치류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급강하해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금류처럼 살기 돋는 아우라가 뿜어질 때가 아주 가끔 있는데, 이를테면 그가 데려온 여러 형님 중의 한 양반이 머리를 깎다 말고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질 무렵 그의 표정은 일순 일그러진다. 마치 우연히 행인과 어깨가 부닥치자 잡아먹을 듯이 그 행인을 꼬나보는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 허나 이는 찰나의 순간으로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화해지는 그다. 다행스러운 건 그가 최소한 나한테만은 단 한 번도 그런 야수의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머리 깎으러 들렀을 그제다. 새끼를 치듯 형님들을 데리고 와 매출 증대에 이바지해준 게 고마워서 친한 척 까불까불 감사를 전했더니 "저번에 저하고 같이 왔던 형님 기억하시죠?" 대뜸 묻는다. 당연히 기억한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뜻밖이었다.

"지금은 은퇴하신 칠성입니다."

"혹시 내가 아는 그 칠성파요?"

"예."

아하, 데리고 온 이들을 부르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영화 속 어깨들이 애타게 부르는 형님마냥 어찌 그리도 그의 입에 착 달라붙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만만하던 내 목소리가 어느새 고분고분하게 변해)그럼 선생님도?"

"한때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딴일하고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알다마다. 건설 폐자재 수거 일을 하며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사는 중이라고 일전에 나한테 밝힌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만卍자며 의미가 도통 읽혀지지 않는 문양이 주먹을 쥐면 또렷하게 드러나게 시퍼런 문신으로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힌 게 어째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오금이 저려 오고야 말았다. 머리를 깎는 동안 꽤 시시덕거렸건만 그가 말하는 걸 나는 귓등으로 듣고 그의 정수리에 닭벼슬처럼 남겨 놓은 머리카락이 행여 잘못되어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을지 거기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콜롬비아 작가 에르난도 테예스의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느날 토레스란 자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와 면도를 해달라고 했다. 토레스는 저항군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인간백정이다. 이발사는 저항군을 지지하는 숨은 동조자다. 기회만 닿는다면 토레스란 놈을 죽이고 싶었는데 제 발로 사지에 들어온 놈이다. 손에 들린 날 선 면도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놈의 목을 그어버리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하지만 이발사는 갈등한다. 비밀스런 저항군 이전에 엄연히 이발사다. 말끔하게 면도와 이발을 해주는 게 이발사로서의 도리이자 양심이다.

'그래,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면도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일을 해내는 중이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비누 거품, 그것이면 그만이다. 당신은 처형의 집행자이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이발사에 지나지 않는다.'

면도가 끝나고 토레스가 돈을 지불한 후 문을 나서려다 이발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 얘기로는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그러더군. 그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명심하라구."​


​ 일 년 가까이 애지중지 가꾼 모히칸 스타일을 깎새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릴 처지에 놓이자 분에 못 이긴 나머지 내 면상에 가차없이 선방을 날리면 그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과 다름없이 공손하게 8천 원(일반커트보다 손이 더 가 추가요금 3천 원을 더 받는다)을 건네는 단골을 보고 황당한 상상에 빠진 나였다. 너무 몰입한 까닭일까. 점방 문을 나서는 그에게 덕담을 한다는 게 가악중에 혓바닥이 굳어졌는지 말이 짧다.

"명절 잘 보내슈."

말해 놓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작가의 이전글명절 대목 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