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by 김대일

안도현 시인의 「삶이란 무엇인가」란 시인지 짦은 수필인지 알쏭달쏭한 글을 재작년, 작년 설에 이어 올 설에 즈음해서도 말밑천으로 삼은 걸 그저 공교롭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마도 그 글을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게 아니면 글귀신에 씐 게 틀림없다.


삶이란 무엇인가

안도현


삶이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어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고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에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쪽을 떼어 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세 물처럼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이고 해삼인지 반성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없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넥타리를 맬 때마다 번번히 쩔쩔 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다 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5,000원을 주어야 할지, 만원을 주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공중전화기에 50원이 남으면 괜히 알고 있는 전화번호 하나를 일없이 누르는 것.

공중전화 부스에 말끔한 전화카드 한 장이 놓여 있으면 혹시라도 새 것인가 싶어 카드 투입구에 속는 셈치고 한번 밀어넣어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전 사람은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택시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꽃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자신이 꽃을 피운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튀는 것.

할머니가 IMF를 '아임프'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빙그레 웃다가, 어쩌다가 늙으신 할머니까지 IMF를! 하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뚱어리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한 바가지의 물을 쓰면 나 아닌 남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뒤에 첫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 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륵차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단칸방에 살다가, 아파트 12평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문득 단칸방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한 평도 안 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구구한 삶의 정의 중 '오래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이란 대목에서 나는 눈길을 잠시 멈추고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하곤 한다.

편지를 받았으면 답장 보낼 생각은 안 하고 혹시 똑같은 발신자가 또 편지를 보내지 않았는지 혹은 그가 아닌 다른 발신자가 보낸 편지는 없는지 수신함을 연신 기웃거리는 건 생래적 이기심일까. 허나 받기만 하고 줄 줄은 모르는 고약한 처신이 완전한 관계 단절보다야 백배 천배 나은 게 삶일지도 모른다. 단절은 이어져 있는 끈을 끊겠다는 모진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받기만 하는 얄망궂음은 상대가 있기에 가능한 관계의 지속이니까.

주는 쪽은 어떨까. 돌아오는 거 없이 주기만 하는 일방통행이 때로는 고되고 야속하기는 하겠다만 설령 언제일지 모르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라고 해도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가는 의례라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위안이 된다. 아래 문장이 주는 위안처럼.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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