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에 세컨하우스가 있다는 손님은 자기가 언약한 대로 보름에 한 번 꼴로 점방을 찾는다. 볼일 끝나면 요금 내고 얼른 자릴 뜨는 손님과 달리 그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이야기 보따리를 만판 풀어놓고 나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수다쟁이처럼. 근데 듣는 나는 하나도 안 지겹다. 구수하면서 리드미컬한 전라도 억양이 애피타이저로 구미를 당기게 해놓고선 청산유수와도 같이 쏟아내는 품이 만담가 뺨을 칠 기세니까.
며칠 전에는 머리 깎다 말고 요새 손님이 좀 드냐고 묻길래 개업 때 비해서는 늘었으나 돈푼깨나 쥐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응수했더니 대뜸 "나가 직업 한나로 외길을 걷던 인간이여. 함 들어볼텨?"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역정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때는 바야흐로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돈이나 실컷 벌어보고 싶은 일념으로 막무가내로 입성한 서울. 맨 처음 발 들인 곳은 시다도 아니고 일꾼들 밥시중 들면서 끼니나 겨우 얻어먹던 흑백TV, 라디오에 부착하는 회사 상표를 특수인쇄하는 서울역 근처 가내수공업 공장이었다. 불목하니처럼 잡일을 도맡으면서 1년쯤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니 한 사람 일몫은 해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거기서 5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렸더니 일머리 좋다는 소리를 들었고 동종업계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 소개로 인천의 한 공장에 들어갔지만 자기보다 월급을 몇 배씩 더 받아 챙기면서도 주색잡기로 가진 것 다 탕진하는 것도 모자라 월급 때만 되면 꼬박꼬박 돈을 빌려가는 친구 행상머리가 더러워서 거기를 때려치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빌려준 돈은 끝내 못 받았단다).
규모가 제법 큰 만리동 부근 공장엘 들어가 월급도 올려 받고 정식 기술자로 대접받으면서 승승장구할 길만 남았는데, 마침 마산에 경제자유구역이란 게 생기면서 임금이 싼 우리나라로 일본 기업들이 떼로 몰려들었단다. 숙련된 일꾼을 급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산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을 즈음 부산의 한 공장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부산이나 마산이나 거기서 거기인 성싶어 부산 공장엘 갔더니 사장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해서 빈정이 상했다. (손님 본인 표현에 의하면)땅콩만 한 체구가 영 볼품없어 보인데다 기술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으까 부산 사장이 지레짐작했다나 어쨌다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는 더러운 세상 운운해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공장에서 하루 정도 일하는 거 지켜보고 입사를 결정하겠다는 부산 사장 말에 여기 아니면 갈 데 없겠냐 부아가 치밀어 한량같이 어슬렁거리면서 시간만 축내던 중 공장 돌아가는 꼬라지가 하도 한심해서 현장 직원을 붙잡고 훈수를 들었다. 그러자 80%에 달하던 불량률이 하룻밤 만에 20%로 쑥 내려갔고 비행기 타고 서울 올라가려 당시 수영공항에 당도한 그를 사장이 삼고초려하듯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부산에 눌러앉게 됐다. 서울에서 받던 월급보다 몇 곱절은 더 받았고 일 마치면 한 잔씩 하라며 찔러주는 용돈까지 합하면 남 부러울 게 전혀 없었는데….
박진감 넘치게 읊어나가는 인생 스토리를 듣다 보니 내 점방 손님 중에 성깔 까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단골이 점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미처 몰랐을 만치 나는 넋이 나갔다.이야기에 빠져든 나머지 소설 주인공이 죽자 분을 참지 못한 청중 한 사람이 소설 읽어주던 전기수傳奇叟를 죽였다는 조선시대 사건이 실화임이 분명하다. 내가 딱 그 청중 꼴이었으니까. 손님 들어오는 기척에 입맛을 쩝쩝 다지던 함안에 세컨하우스가 있다는 손님은 "다음에 오면 이야기 이어감세" 미련을 남기고 홀홀히 떠났다. 부산에 정착한 뒤로부터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가 몹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