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를 위해

by 김대일

한겨레문학상 21회 수상작인 『누운 배』(이혁진 저)는 중국의 한국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마치고 정박해 있던 거대한 배가 갑자기 쓰러지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사 경영진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사고 다음 날 아침 천재지변 때문인 것으로 결론내린 뒤 이에 대한 수습을 지시한다. 경영지원팀은 보험금을 받아내는 중요한 업무를 맡아 백방으로 뛰고 보험금 협상도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갑자기 회사 오너인 회장이 보험금은 제쳐두고 먼저 배를 수리해 일으켜 세우자고 결정하면서 일은 더 복잡하게 꼬인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들은 공로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실제 업무보다는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춘 중간 간부들이 임원으로 승진을 한다(한겨레 기사인용, 2016.07.13.).

수재 소리를 듣던 고등학교 동기가 있다. 이과반 전체 학생 이름을 순서대로 석차를 매기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은 우수했고 근면, 성실의 아이콘이자 겸손할 겸謙자가 들어간 이름에 걸맞게 모든 이에게 겸손했던 녀석이다. 삼형제 중 막내로 남편을 일찍 여읜 모친에 대한 효심이 유난히 깊었던 녀석은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까지 감안해 성적은 충분했지만 서울 유학을 포기하는 대신 전학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부산의 한 국립대 기계공학과로 진학할 정도로 생각까지 깊었다. 군 면제 판정을 받은 김에 대학 4년을 내리 마친 녀석은 국내 굴지의 중공업그룹에 입사해 한동안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으나 계열사라고는 하지만 변방이나 다름없는 조선소로 뜻밖에 발령이 나 가족들 모두 남도의 한갓진 도시로 이주하고부터 회사 중심부에서 밀려났다는 자괴감에 시름겨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근면, 성실했고 누구보다 강인한 내면의 소유자였던 녀석은 이내 훌훌 털어 버리고 제 업무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고 마침내 자타가 공인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 반열에 올라섰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대망의 임원까지 코앞이라고 여기던 찰나, 녀석은 불명예 퇴직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사연은 기구했지만 구구절하게 설명은 못하겠다. 그저 『누운 배』라는 소설을 소개하는 글에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들은 공로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란 대목에 방점을 찍는 걸로 갈음해 녀석을 대변할밖에. 어차피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 친구 발언에 더 마음이 기우는 나로서는 녀석의 사직에 대해 왈가왈부할수록 편파적일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합리성과 효율성 대신 연줄이나 힘을 가진 이에 의해 지배되는 회사의 생리 속에서는 제 아무리 굿세고 꿋꿋한 내구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오래 버틸 재간은 없다는 걸 녀석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남의 돈 먹기가 어데 쉬운 줄 아나?" 라는 말로 부친은 장사치가 월급쟁이보다 속은 편하다는 걸 애둘러 표현하시지만 2년 전 영욕의 회사를 제 발로 나오면서 끌탕이었을 녀석을 생각하면 나만 속 편하게 지낸 게 못내 미안할 지경이다.

회사에서 인정받은 능력을 그대로 살린 엔지니어링 및 컨설팅 회사를 창업한 녀석은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잘 굴러가고 있는 듯하다. 수입은 회사에서 받던 연봉보다 두세 배는 족히 넘고 받아놓은 수주도 제법 넉넉한갑더라. 자영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홀가분함에 순조롭게 돌아가는 회사 경영까지 모처럼만에 훈풍을 만판 느끼는 중이지만 경계심을 쉬 풀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전 직장에서 자신에게 베푼 일종의 전관예우라 불로소득이나 다름없다고, 하여 향후 몇 년이 자기의 진가를 드러낼 중요한 평가의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 넉넉한 여유 속에 도전과 패기가 형형한 녀석의 눈빛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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