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집에서 샤워로 대충 때우고 마는데 설 연휴에 동네 목욕탕엘 선뜻 갔다. 설날 아침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속이 꼬이고부터 멍석말이로 뭇매를 맞은 듯 쑤시고 돌덩이를 인 듯 천근만근인 몸뚱아리가 살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거길 향했던 것이다.
연휴 아침 목욕탕은 한산함 그 자체였다. 탕 안에서 목욕에 열중하는 두어 사람 말고는 목욕탕 로고가 박힌 다 낡아빠진 면티를 입고 찜질방에서 실컷 땀을 빼고 나온 양 발그스레 상기된 면상을 하고선 평상에 앉아 뭔가를 연신 문지르고 있는 정정한 노인이 다였으니까. 옷을 벗으면서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니 숫돌에 가위를 갈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는 목욕탕에 입점해 있는 이발소 주인임에 틀림없다. 그러자 그의 심상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이 발동했다. 한갓진 목욕탕에서 가위를 갈고 있는 노인한테 내가 이입이 되어 버린 까닭을 뭐라고 설명해야 당신은 이해할까? 동질감? 아이덴티티? 유유상종?
명절 연휴 손님 뜸한 줄 뻔히 알면서도 소일 삼아 나온 이발사는 어쩌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미래의 자화상일지 모르겠다. 손님이야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 나는 그저 내가 있을 자리에서 내 할 바에 충실하되 숫돌에 가위를 갈듯 보다 가멸차고 윤택한 노년의 추억을 쌓아나가기 위한 뻘짓에 몰두할지 모른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지금 점방이 어느 정도 탄탄해졌다 싶자 나는 미련없이 통영항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동네에다 새 분점을 연다. 사흘만 일하고 나흘은 남해와 서해 섬들을 일주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이를테면 통영 점방은 서해와 남해의 숱한 섬들을 나다니기 위해 마련된 전초기지인 셈이다.점방에서 보내는 사흘은 나흘을 풍요롭게 지내기 위한 계획 세우기로 어영부영할 게다. 손님이 찾아 주면 고맙지만 아니 온다고 조바심이 날 까닭이 없다. 그렇게 늙어가면 여한이 있을 리 없다. 나른한 목욕탕 풍경 속 이발사를 닮은 나의 미래도 제발 나른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