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경 내 점방엘 처음 들렀을 때 남편은 커트와 두피마사지를, 아내는 두피마사지를 받았는데 부부의 행동거지가 꽤 인상깊었다. 살짝 츤데레 기질이 엿보였지만 아내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눌 때는 친오빠처럼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던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경어를 깍듯하게 써 응대하는 아내는 어제오늘 급조한 티가 아닌 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 다정한 일상성을 확보한 부부의 모습이 하도 신선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게다.
부부는 매달 한 번씩 꼭 내 점방을 방문하는 단골이 되었다. 송년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12월 중순께 원주 어느 공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아들까지 가족이 몽땅 몰려와 매상 올리는 데 제법 기여했다. 그 무렵 부친께서 훈수를 둔 게 있었다. 여자 손님이 두피마사지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남자 손님보다 머리숱이 많아서 마사지 기계에 무리가 많이 가고 머리 감기는 데도 꽤 번거로우니 원래 요금보다 2천 원을 더 얹은 5천 원을 받아도 된다는 게 훈수의 골자였다. 공교롭게도 두피마사지 기계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작동이 안 되는 바람에 수리를 맡겼다가 막 돌려받을 즈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수리 비용 십수만 원이 하도 아까워서 반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라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아니 여자 손님 목에 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알량한 2천 원 때문에 행여나 소탐대실하는 건 아닌지 적잖이 두려워서였다. 12월 모두 출동한 가족 앞에서 '여자 두피마사지 요금 5천 원으로 인상'을 선언하자 공기가 일순 어색해진 걸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미리 공지하지 않아서 오늘까지만 예전 요금을 받겠다면서 인상할 수밖에 없는 깎새의 고충을 이해해주십사 우는 소리를 곁들였지만 썩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마음 상한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명절 대목에 들를 거라는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발걸음을 끊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빈정이 상한 아내가 남편 커트하러 가는 길까지 막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천지 분간도 못하고 떠들어 댄 입방정을 후회했다. 그런 그들이 1월 마지막 일요일에 들렀다. 가슴이 벅차게 반가웠으면서도 사람 애간장을 태운 그들이 한편으로는 야속해서 짐짓 무덤덤하게 남편 머리를 깎기만 했다. 커트 작업을 마무리한 뒤 남편에게 "두피마사지 준비할까요?" 물었고 남편은 "당연하지요" 흔쾌히 대답했다. 여세를 몰아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아내에게도 "사모님도 하실 거죠?" 물었더니,
"미장원에서 퍼머하면서 두피마사지까지 받고 오는 길이라서 오늘은 됐어요."
어째 외틀어진 것이 좁히기 힘든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그보다는 '어디 너도 한번 속깨나 끓어 봐라. 그래야 손님 귀한 줄 알지'라고 항의하는 듯이 들린 건 내 착각일까. 어쩌면 그녀가 정말 빈정이 상했을 수도 있다. 그깟 돈 몇 푼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돼먹잖은 핑계나 내세워 요금을 올리는 수작질에 경종을 울리려고 작정을 했는지 누가 알겠나. 뜨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유독 여자 두피마사지 요금만 2천 원씩이나 올린 명분으로 남자보다 무성한 머리숱으로 인한 마사지 기계의 손상을 내세웠지만 내가 봐도 참 가당찮긴 했다. 두피마사지 기계는 두피에다 대고 마사지하는 기계니 남자 머리 여자 머리 가릴 계제가 아니다. 게다가 기계 이용자의 절대 다수는 남자다. 하여 여자 머리숱 운운하는 건 따지고 보면 개수작이 맞다.
하여 나는 더는 군소리 안 하는 대신 아내 몫까지 더해 평소보다 오래 남편의 두피마사지에 정성을 기울였다. 두피 마사지를 받는 남편을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내를 앞거울로 지켜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봉합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