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는 공동주택이나 빌딩 용역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십 년을 훌쩍 넘긴 경력으로 그 방면에서는 제법 베테랑 대접을 받는가 보더라. 용역관리 회사가 우후죽순 난립하다 보니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스카우트인 양 회사를 옮겨 다니기도 했다. 스카우트니 좋은 대우 운운하지만 드라마에서나 보던 간지나는 인재 발탁 장면을 상상하는 건 곤란하다. 기껏해야 월급 10~20만 원 더 받는 게 다니까. 원래부터 보수 박하고 근무 여건이 열악한 분야로 자자하다 보니 오래된 경력을 발판으로 한 푼이라도 더 급여를 받거나 근무 덜 팍팍한 곳으로 옮겨 다니는 게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남편이란 작자가 가정 경제를 파탄내기 직전까지 몰고간 십수 년 전부터 생업 전선에 본격 뛰어든 마누라는 본의 아니게 가장 노릇을 여지껏 해오고 있다. 두 딸 밥 안 굶기고 구김살없이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악바리같이 회사에 매여 살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도 모자란지 잔무 처리로 주말까지 반납하고 회사를 다닌 대가는 최저시급을 겨우 면할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애들 밑 닦는 건 고사하고 집안 살림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 신우신염, 대상포진, 폐질환 따위 병을 달고 시난고난하는 처지가 돼 버렸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편이란 작자는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마누라를 집에 눌러 앉히고 싶었지만 딱히 뾰족한 대안이 없어 늘 죄인처럼 움츠러들 뿐이었다.
마누라도 연약한 여자인지라 몸도 마음도 끝 간 데 없이 허물어지곤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을 막무가내로 몰아세운다. 자기는 집에 들앉아 살림만 할 테니 당신이 가족을 책임지라면서. 돌아오는 대답이 궁색할 줄 뻔히 알면서도 흥분에 들떠 짓떠들고 나면 본인 속이야 좀 풀릴지 모르겠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무능함만 새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마는 남편 속은 갈수록 문드러져 버린다.
점방이 정상 궤도에 안착하자면 예상컨대 앞으로 일이 년은 더 지켜봐야 한다. 작년 3월 개업한 이래 올 정월 구십만 원을 제외하면 월 평균 육십만 원을 마누라 통장에 입금하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연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월 매출은 고무적이지만 '매달 이백오십만 원씩 마누라 통장에 입금'시키는 게 일상이 되려면 갈 길은 멀고 마음만 급하다.
며칠 전 마누라 푸념이 발작처럼 도졌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전 직원이 기밀을 유출해 법정 다툼까지 번진 모양인데 그 직원과 돈독했다는 이유로 엮이게 된 마누라는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둘 태세다. 혐의가 전혀 없음에도 공범자로 몰아가는 수뇌부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이다. 불만이 가득한 안색으로 퇴근한 마누라는 남편한테 살림만 할 테니 대신 벌어오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고 무능하기 짝이 없어서 대응할 말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 남편은 마누라가 이쯤에서 제발 멈추기를 바라면서도 오래 전부터 들던 의문만 맴맴 돌았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걸까? 당장은 그럴 만한 상황이 못 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토록 기를 쓰고 푸념을 늘어놓는 건 그저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해소용일까? 그걸 들을 적마다 간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이미 내상이 심한 남편이란 작자는 과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점방을 열면서 딱 한 가지만 염두에 둘 뿐이었다. 마누라 통장에 매달 이백오십만 원씩 꼬박꼬박 입금시킬 수만 있다면, 두 딸이 제 앞가림을 할 만큼 다 크고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마누라가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에 월 이백오십만 원이면 충분할 때가 되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편이란 작자는 통영으로 홀연히 떠날 거라고. 남편 또한 일체의 고통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영위할 자유가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