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즐거운가

by 김대일

지난 주 하루는 이용학원에서 동문수학했던 여자샘(이 바닥 호칭은 점방 가진 자=원장, 기술만 가진 자=샘, 둘 뿐이다) 두 명이 내 점방에 놀러왔다. 둘 다 남 밑에서 경력을 쌓던 중에 김해 사는 공샘은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와 잠시 가료 차 쉬고 있고 이샘은 부산 온천장 부근 손님으로 바글바글한 점방(순전히 이샘 표현이다)으로 적을 옮겼다고 밝혔다. 나흘 일하고 일당으로 삯을 받는 재미가 쏠쏠한지 신수가 훤했다.

내가 이용사 자격증 취득에 안간힘을 쏟을 때 이미 미용사 자격증을 딴 그들은 남자 커트 실무를 익히려고 이용학원 문을 두드렸다. 미용사 자격증을 소지하고도 남자 커트 기술에 입문한 건 창업시 초기자본이 미용실보다 상대적으로 덜 들어서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속내를 까보면 남자머리 깎는 게 훨씬 만만하다고 여겨서였다. 그래서 자만했을까. 부산 바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위손이라며 자기 피아르가 과도한 학원 원장한테서 몇 달째 수강해도 좀체 갈피를 못 잡던 샘들이 수강 기간이 만료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학원을 뛰쳐 나간 걸 구두선이나 날릴 줄 알지 진중하지 못해 신뢰가 영 안 가는 원장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듯한 당시 그들의 버르장머리로는 원장으로든 기술자로든 밥벌이할 깜냥이 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겠구나 나는 단정하다시피 전망했다.

다른 건 다룰 줄 모르고 이발 기술에 한해서만 말하자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장에 뿌리 박고 직접 부딪혀봐야 기량이 는다. 암만 학원에서 국내 최고의 가위손을 강사로 모셔다가 최신 유행하는 헤어 디자인 기술을 익힌다 한들 그 대상이 사람 머리가 아니고 가발이면 온실 속의 화초일 뿐 전혀 실용적이질 못하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하염없이 흐르고 바리캉 든 손은 오한이 들린 듯 덜덜 떨면서 손님 머리를 깎는다. 어렵사리 깎고 났더니 어디서 어수룩한 팔푼이가 들어와서는 머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냐며 손님, 원장 할 거 없이 갖은 면박을 가뜩이나 위축된 심사에다 비수처럼 찔러 대면 정말 천하의 무용한 인간 말종일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좌절감을 숱하게 맛보면서도 이대로 물러서자니 여지껏 쏟은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는 본전 회수의식이 자의식을 자극해 차라리 여기서 뼈를 묻어 이발 귀신이 되겠노라는 결기로 화함으로써 현장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진정한 실무형 인간으로 거듭나야지만이 하루라도 빨리 명함이라도 내밀 터수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두 샘은 기술적으로는 비록 미숙했을지 몰라도 재빨리 온실(학원)을 탈출해 모진 이발 세계로 자진해 나아간 건 참으로 잘한 일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자기 기술에 대해서 스스로도 신뢰하지 않던 그들이 제법 내공 쌓인 기술자인 양 티를 내는 것도 모자라 학원 출신 다른 샘들의 기량까지 쓸까스르기까지 하니 이를 두고 환골탈태라고 해야 하나 괄목상대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는 개구리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나보다 너더댓 살 아래인 두 샘의 최대 관심사는 개업이었다. 삼 년 전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초지일관했던 청사진이었지만 지난 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공샘은 여전히 개업에 방점을 두지만 예상외로 만만찮을 초기 비용에 몸을 사리는 눈치였다. 개업을 준비하면서 한 푼이라도 덜 쓰고 아끼면서도 실속 차리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문을 구하는 품이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재고할 수도 있다는 반증으로 비춰졌다. 이샘은 기술자 대접을 받아가면서 일당 받고 사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했다. 일정 경지에 올랐다고 자평하는 기술을 밑천 삼아 본인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는 판단인 듯싶었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는 호조건을 포기하기란 이샘 입장에서는 쉽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구별짓는 건 아니지만 비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나는 여긴다.

그런 그들을 나는 존중한다. 점방 차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번듯한 기술 하나면 큰돈은 못 벌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건 이 바닥에 한해서는 진리다. 남 밑에서 밥 벌어먹고 살아도 제 기량에 응당한 대가를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번 돈으로 이 꼴 저 꼴 다 뵈기 싫어질 시점(예를 들어 내 나이 즈음?)에 개업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금 즐겁냐는 거고 내 결론은 '그렇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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