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졸업식을 마친 막내딸은 친구와 영화 <타이타닉>을 봤다. 제 나이보다 더 오래 전, 사반세기 만에 재개봉한 영화를 보면서 걔는 무얼 느꼈을지 긍금하던 차에 어슴프레 그 실마리가 찾아 줄 칼럼을 마침 읽었다.
교수면서 영화평론가인 강유정은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기, <탑건:매버릭> 흥행의 뒷배로 X세대였던 40대의 강력한 문화적 전도력을 꼽았다. 민주화와 경제적 호황 그리고 문화적 개방이 맞물린 풍요롭고 자유로운 한국의 1990년대를 누렸던 당시 청소년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문화적 포식성으로 이후 X세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X세대는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개방성으로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금지된 일본 문화를 적극적으로 탐닉했고,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던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찾아 손수 번역, 공유하며 즐기던 세대이기도 하다. 정치적 구호보다는 문화적 취향을 선언함으로써 세대적 차별성을 고지하던 세대, 그 세대가 이제 40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문화소비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40대는 현재 10대, 20대의 부모 세대이기도 한데 개방성만큼 문화적 전도력이 높아, 자녀 세대를 향한 문화콘텐츠 소개와 확산에 적극적이다. 강력한 취향의 고백은 그만큼 흡인력을 갖는다. 40대는 자녀 세대에게 <탑건>이나 <슬램덩크> 를 권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탑건>이나 <슬램덩크> 흥행 지표가 다른 대중문화 상품과 달리 3040에서 촉발해 1020세대로 확산되는 양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마음>, 경향신문, 2023.02.10.에서 정리)
그렇다면 모르는 내용이 없는 <슬램덩크>, <타이타닉>을 보러 영화관을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감독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말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작품이 처음 등장한 시절의 초심을 잘 살려내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명랑만화의 과장된 표정이나 말투, 학원 폭력무르이 어쭙잖은 액션이 아니라 농구에 대한 진심, 결점을 이겨내는 열정의 힘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20년이 훌쩍 넘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재개봉에서도 발견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즐기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슬램덩크), '나는 세상의 왕이다'(타이타닉)라고 소리치던 정서와 다시 접촉하고 싶은 것이다.(위 칼럼 인용) 막내딸한테 물어봐야겠다. <타이타닉>을 보고 느낀 게 뭔지.
하지만 칼럼의 결말은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 과거와의 교감이 더 절실해졌느냐이다. 내일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어제가 더 나은 세상이라면, 여기 우리의 삶은 그만큼 부조리하고 고되다는 뜻일 테다. 삶이 고단할수록 향수는 힘이 세진다.(위 칼럼 인용)
과거를 게워 내 되새김질해야만 고된 현실을 잊을 수 있다라…, 길어야 고작 2시간용일 텐데 그러고 나서는? 서글프구나.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