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by 김대일

염색약을 직접 가져 와서 발라 달라는 손님 입에 찰싹 달라붙은 말은 '대충대충'이라는 단어였다. 점방 염색약을 안 써도 염색보를 두르는 순간부터 요금은 붙게 되는데다 염색약 아껴서 이게 웬 떡이냐 싶다가 경박하기 짝이 없는 손님 말본새로 이내 기분이 상했다.

업무차 자주 가는 천안의 어디쯤엔 5천 원짜리 커트점이 즐비하댔다. 커트 5천 원인데 염색까지 하면 1만5천 원. 거기서는 머리 깎는 데 3분이면 충분하단다. 번개불에 콩을 볶아 먹데끼 속성이니 딱 5천 원짜리 값어치라나. 그러니 나보고도 대충대충 하랬다. 자기 머린데도.

염색도 마찬가지. 홈쇼핑에서 구매했다는 염색약은 1제 염모제와 2제 산화제가 한 튜브 안에 들어 있어 간편하긴 하나 효과는 영 성에 안 차나 보더라. 홈쇼핑 상품 거개가 그렇듯 묶음으로 구매하다 보니 처치 곤란에 그냥 버리자니 아까워서 들고 온 거라면서 염색이 잘 안 들어도 괜찮으니 대충대충 바르랬다. 단골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열나게 브러시질하던 깎새를 김빠지게 만드는 능력이 출중한 손님이시다.

한두 번이면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말겠지만 이 양반 '대충대충'이란 말이 상습적이다. 하도 '대충대충' 이라고 씨부리는 통에 나를 너무 대충대충 보는 건 아닌가 해서 부아가 치밀었다.

"천안을 안 가봐서 그쪽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여기는 동네 장사라 대충대충 했다가 성의없다고 손님들한테 찍히면 그날로 점방 접어야 합니다. 또 강조하고 싶은 건 깎새마다 깎는 스타일이 제각각이라 작업 속도 빠르고 느리고로 장사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최대한 점잖은 어조로 받아쳤다. 결과는?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들었으니 대충대충 하란다. 손님 말에 대꾸가 기니 요점만 간단히 하라는 의미인지, 그래봐야 5천 원짜린데 뭐 그리 대단한 유세냐, 그만 작작하라는 의미인지 가늠이 안 돼서 어째 열이 더 받았다. 쓰고 남은 염색약을 넣고 그 포장지에 손님 이름을 기입했으니 다음에 다시 올 게다. 그 손님 이름 옆에다 '대충대충'이라고 쓰려다가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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