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智的 -> easy적 -> 사람을 너무 쉽게 본다
고등학교 때 한문 과목은 그때까지 결혼을 안 한 여자 선생이 맡았다. 짓궂은 남고생들 등쌀 탓인지 원래보다 겉늙어 보였던 여 선생은 그래도 실력만은 출중했던 걸로 기억한다. 들을수록 노곤해지는 마성을 지닌 선생의 목소리가 활활 타던 학구열을 속절없이 식게 만든다는 같잖은 핑계를 갖다 대며 한문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했지만 그 재미없이 진지하기만 했던 선생이 읊어주던 공자왈 맹자왈 사서삼경 구절과 한시, 고사성어 따위에 묘하게 끌렸던 나는 이내 한자의 세계에 풍덩 빠져서 여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일'까지 리포트를 제출하랬더니 '금요일'까진 줄 알았다면서 왜 헷갈리는 표현을 쓰냐고 교수에게 따지고, '이지적理智的이다'라고 칭찬하니 자기를 너무 만만하게 본다(easy)고 되레 화를 낸다. 요즘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를 다루는 신문 기사 내용 일부다.
우리말 어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한자어란다.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이른바 개념어들이 널렸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이 세상 어지간한 글자들은 다 읽어내지만 읽는다고 뜻까지 아는 건 아니다. 한글 전용의 맹점이다.
나는 국한문 혼용을 선호한다. 내가 한자를 좋아해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는 웬만큼 한자를 알아 두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떠들거나 남이 일껏 말한 걸 곡해해 들어서 벌어질 불상사는 최소한 면할 수 있다는 점을 살면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문해력 저하를 막을 방도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봤다. 이참에 우리말 어휘의 태반인 한자를 한글 전용 세대가 이해하기 쉬운 신조어로 싹 다 바꾼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겠지. 그럼 자라나는 세대들이 한자를 쓸 줄은 몰라도 읽고 이해할 정도의 능력만이라도 갖추게 한자 교육 방법을 개선하자는 의견은?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이라는 데 내 한 표를 던지겠다.
한문 선생이 악명 높은 학생 주임과 결혼했다는 후일담을 한참 뒤에 들었다. 나를 한자의 묘한 매력에 빠지게 만든 이가 또다시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굳이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앞의 묘는 '오묘奧妙하다', '절묘絶妙하다'로, 뒤의 묘는 '기묘奇妙하다', '미묘微妙하다'쯤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