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니까 작은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무렵이다. 녀석은 한창 유행하던 액체괴물(줄여 액괴)에 마음이 뺏겼다. 입문 단계를 넘어서자 유투브에서 다양한 액괴 스타일을 목격하거나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각양각색 재료들로 버무려진 액괴들을 탐문 조사하더니 진지하게 자기만의 참신하고 창조적인 액괴를 만들어냈다. 그때는 나도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독서가로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엄마한테 연신 쿠사리를 들으면서까지 죽자고 액괴에 매달리는 녀석을 위해, 정말 억지스럽지만, 다치바나식 지知의 단련 방법을 흉내내 변호하는 글을 블로그에 남겼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자기에게 최적화된 지식 분류 체계가 개인마다 잠재돼 있을 테다. 지식 분류 체계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실상은 관심 분야를 제 구미에 맞게 나름대로 도식화함으로써 일종의 셀프 지식 차트를 완성하는 게다. 그렇게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영역으로 구축된 차트 속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작업을 시도해 나가다 보면 지식들 사이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 기발하면서 크리에이티브한 제3의 교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하리라 혼자 어림짐작한다.
둘째딸 머릿속에 액괴의 지식차트가 잠재해 있고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기존의 액괴 지식과 반응해 제3의 기발한 액괴 스타일이 창조된다…뭐 이런 식의 얘긴데 견강부회도 이런 견강부회가 없구나 싶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여러 저술 중에 나를 특히 사로잡은 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지식의 단련법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그의 고양이빌딩에 꽉 들어차 있는 10만 권이 넘는 장서도 부럽지만 다치바나식 지식 차트라는 도표가 보여주듯 그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 구축은 나를 한껏 고무시켰다. 뭔가를 알고 싶다는 갈망을 가급적 빠르고 효율적으로 충족할 지름길을 그가 알려줄 것만 같아서.
하지만 당연하게도 왕도란 없다. 다치바나는 그의 관심사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또 읽었으며, 관련 자료를 우직하고 주도면밀하게 수집, 정리한 뒤 그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그저 끊임없이 써내려 갔던 것이다. 「지의 축적」,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따위 저서는 세상의 지知를 향한 매혹적인 행로난行路難을 다치바나 다카시란 저자를 통해 소개할 뿐이다.
2021년 6월 24일자 신문은 일제히 지난 4월 숨진 다치바나 다카시 소식을 국제면에 실었다. 1974년 다나카 일본 총리의 금권 정치를 파헤친 글로 '탐사보도의 선구자'로, 정치와 사회 문제 뿐 아니라 자연과학과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쓴 작가로, '고양이빌딩'으로 명명된 그의 서재에 들어차 있는 10만 권이 넘는 책 소장가 겸 독서가로 그의 생애를 요약하지만 나는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라는 사람이 언급한 글로 다치바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놀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기다'라고 실려 있지 않은가. 다치바나 씨의 저서 「거악 vs 언론」이라든가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등은 모두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을 댄 저서들이다. 단 한 번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일로 선택한 적이 없다.
와인에 대해 알고 싶어져 갑자기 프랑스로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편집자를 당황시킨 것도, 건물에 고양이를 그릴 계획을 세우고 나서 흥분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청어람미디어,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