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 속의 술꾼

by 김대일

오늘은 또 뭘 써야 할지 혼자 심각해하다가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24일 개설했으니까 햇수로는 5년째다. 5년 전, 4년 전 게시글들을 뒤적거리면 혹시 쌈박한 부스러기라도 얻어 걸릴지 모른다는 잔머리가 발동해서인데 마침 내 눈에 딱 들어온 게 있었으니, 2017년 2월 27일로 30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술집 <소설>에 관한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칼럼이 오늘 내가 쓸 글의 단서를 제공했다.

칼럼에서는 <소설>을 자주 드나드는 여러 날라리들 이름이 거론됐는데 그 중에는 나도 그가 낸 책을 재밌게 읽은 임범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포함됐다. 임범은 2009년부터 「한겨레21」이란 주간지에 <내가 만난 술꾼>이라는 제하로 인터뷰도 아닌 것이 에세이도 아닌 그야말로 한 잔 걸치고 쓴 것 같은 연재물을 실었는데 거기에 자주 등장하는 술집이 <소설>이었다.

임범은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오래하면서 알고 지낸 각계각층의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정겹게 그렸다. 특히 글 팔아 술값에 보탤 수 있는 건 다 당신의 은덕이라는 듯이 연재물의 제일 첫 술꾼으로 술집 <소설> 주인장인 염기정을 내세워 심상찮은 술집의 내력과 주인장의 꼬장을 술술 풀어냈다.(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대체로 호인에다 솔직한 편이라고 역시 술 좋아하는 내가 자부한다. 그래서 임범의 글은 솔직담백하다. 임범은 단행본을 몇 권 냈다. 재밌어서 권할 만하다)

이름 대면 알 만한 유명짜한 인물들이 술을 매개로 사적이고 정겨운 모습으로 묘사될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이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뒷배경으로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아지트!

자, 그럼 아지트의 조건을 앞의 내용을 참고해 정리해 보자. 우선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당연히 필요한데 좁을수록 너나들이하기 용이할 게다. 이어 <소설> 염기정처럼 "너 우리 집 오지 마!"라고 내뱉을 수 있는 당차고 꼬장꼬장한 주인장과, 그 주인장이 술에 째려 꽐라가 됐을 때 대신 잔 나르고, 술 나르고, 음악 틀고, 계산까지 알아서 하는 날라리 단골들이 왁자지껄 포진해야 진정한 아지트로써의 술집이겠다.

서울 가회동에만 <소설>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우리터>, <잔치집>, <까치골>… 상호만 달리할 뿐 부산 장전동에도 우리들만의 <소설> 같은 아지트들이 명멸했다. 그 아지트 속의 날라리 술꾼들이 지금 너무 그립다.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784095.html#cb


http://h21.hani.co.kr/arti/COLUMN/111/?clin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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