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인 손님이 깔롱지기는 거 봤나? 로맨스그레이의 격조와는 한참 동떨어진 머리 스타일은 나잇값 못하게 경박해 보이지만 속절없이 먹은 그 나이를 한 살이라고 덜어내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함부로 비난해선 아니 된다.
손님 주문은 매번 똑같다. 한 쪽만 눈썹 밑에까지 내려온 언밸런스한 앞머리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고, 옆머리는 머리카락 끝을 회를 뜨듯이 뾰족하게 처리하는 샤기컷을 연상시키게 살짝 걷어낸다는 기분으로 숱가위로만 작업할 것, 뒷머리는 안 보이니까 깎새 처분대로 따르겠다. 개업 이래 보름 주기로 점방을 찾는 단골 of 단골이라 가상하긴 하나 등장과 동시에 최고 긴장 모드로 변하는 깎새로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손님이기도 하다. 왜냐고? 그가 바라는 옆머리 스타일이 뚜렷하게 그려지지가 않아 딱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러니 실컷 작업을 해놔도 손님이 OK 신호를 보낼 때까지 수정 작업이 이어지다 보니 깎을 게 별로 없는 머리인데도 늘 진이 빠진다.
영도 어디메쯤 있다는 군수품 생산업체의 기술자로 일한다는 소릴 들었다. 정년퇴직이 코앞일 무렵 유일무이하게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한 그를 회사 오너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정년을 무기한 연기시키고 임금피크제 적용 없이 원래 보수 그대로 주는 조건으로 간단없는 근무를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계속 회사를 다니게 됐다고 쑥스럽게 밝히자 왜소한 손님의 몸뚱아리가 근육질의 헐크로 갑자기 변신하는 착각이 들었다. 회사에 기여하는 대가로 얼마를 받는지 물어보질 않아서 가늠이 안 되지만 주머니 두둑한 사람한테서 느껴지는 여유만만은 꼭 물어봐야 아는 건 아닐 테다. 행동거지, 말투에서 자연스레 풍기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 양반 제 몸뚱아리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일랑 전혀 안 아까워하는 듯싶었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짚고 넘어갈 건, 내 점방을 자주 찾는 까닭이 요금이 싸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그나마 내가 얼추 맞춰줄 줄 알아서란다), 입성은 비슷한 또래 무리에 섞여 있음 금세 도드라질 만큼 세련되고 유니크한 캐주얼 차림을 선호하며,어지간해서는 초로가 소화해 내기 어려운 디자인의 운동화를 신곤 하던데 그것들을 값으로 치자면 만만찮았을 텐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속을 들여다볼 수 없어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늘어놓는 잔말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속내로 유추해보자면 그 의도가 썩 순수하다고만은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무릇 인간이라는 동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성한테 깔롱지기고 싶은 욕구가 본능적이니까. 이왕이면 젊고 발랄하게 보임으로써 호감 뿐 아니라 성적 매력까지 어필할 수 있다면 뭐든 마다하랴. 그 뒤의 일은 알아서들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