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이란 건축가를 알게 된 계기는 그가 쓴 칼럼을 읽으면서다. 2014년 무렵 경향신문에 연재되던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중에 미셀 푸코에 의해 소개되었다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개념을 우리 주변 공간, 시설과 연계해 설명하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던데다 호소력 짙은 필력이 매력적이어서 이후로 그의 저서를 섭렵했던 적이 있었다. 도서관을 전전하며 그의 저서를 읽을수록 건축가임에도 저 웅숭깊은 인문학적 통찰과 그것을 빛나게 만드는 수려한 글솜씨에 매료된 나는 건축에는 완전 문외한이면서도 그의 저서를 관통하는 '빈자의 미학'을 내가 사는 이 도시의 공간을 바라보는 안목의 잣대로 삼고자 용을 썼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정신적 스승으로서 승효상을 나는 사사했다.
어떤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기에 수록된 흑백사진 한 장의 인상은 내 뇌리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진실의 건축'이라 명명했고 승효상이 '짙은 빛과 깊은 그림자가 재현한 공간은 그야말로 침묵의 신비로 가득 차 있었다'며 감격해했던 <르 토로네 수도원>의 어두운 회랑, 아니 더 구체적으로는 그 어두운 회랑을 비집고 흘러드는 빛이었다. 실물이 아닌 사진일 뿐인데도 살면서 여지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걸 경건함이라고 해야 할지 숙연함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종교적 신비감이랄지 딱히 표현하기조차 힘든 기분에 취해 한참을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승효상이 출연했대서 점방에서 재방송으로 혼자 봤다. 부산 사투리 억양은 정겨웠고 그의 작품이라고 소개되는 건축물들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그의 건축철학을 충실히 반영한 것 같았다. 그러다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갑자기. 나도 모르는 새 벌어진 청승이었다. 경북 한 주택가에 들어선 네모난 회갈색 건물. 그것은 승효상이 지은 '하양무학로교회'였다. 20평이 채 안 되는 소박한 벽돌 건물은 높다란 첨탑도, 네온사인으로 밤새 반짝거리는 십자가도 없었다. 그저 하늘을 이고 있는 타우 십자가와 조그마한 철제 십자가가 있을 뿐. 그런데, 그 타우 십자가로 흘러내리는 빛, 그 빛이 나를 울렸다. 경건한 환희로 벅차 흐르는 눈물. 아아, 그 빛은 <르 토로네 수도원>의 어두운 회랑을 비집고 흘러드는 빛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는 또다시 사람이 만든 건축물에 감동하고 말았던 것이다.
화면에 '하양무학로교회' 타우 십자가가 나타나면서 승효상의 나레이션이 흘렀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 꽤 많아요." 왜 울까? 그는 "가장 단순한 게 신비로워서"라는 답을 내놨다. 승효상이 지은 건축물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챈 희열이 쉽사리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