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문전성시

by 김대일

지난 일요일 아침 10시쯤 첫 손님이 입장해 커트보를 막 두르려던 참이었다. 곧바로 두 번째 손님이 들어와 대기석에 앉는 걸 신호로 누가 보면 앞사람 꽁무니를 따라가듯 손님들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고 순식간에 조붓한 10평 점방은 손님들로 점령당했다. 이후로 오후 3시 반까지 근 6시간 동안 커트하고 염색하고 커트하고 염색 손님 머리 감기고 또 커트하고 염색하고, 커트하고 염색 손님 머리 감기다 간혹 커트하고 두피마사지하는 동작만 쉼 없이 반복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늦은 점심을 간신히 먹고 난 오후 4시부터 2시간 가량 똑같은 패턴이 또 반복되었다.

다른 사람 머리 깎아 얼마를 벌어야 식구도 나도 먹고살 걱정을 덜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그만큼 벌자면 손님은 또 몇 명을 받아야 하는지 쓸데없이 계산을 해봤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밥벌이로 바람직한 하루 매상을 평균적으로 20만 원을 잡는다 치면 커트 30명과 커트+염색 8명으로 하루 매상을 올리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양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 듯싶지만 하루이틀 하고 말 장사가 아니니 요는 체력이라서다. 바리캉 들고 설치는 게 그닥 힘 안 드는 하찮은 동작처럼 보여도 막상 해보면 중노동이다. 손님 취향에 들어맞게 깎아내자니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온몸의 기를 모아 목전의 추저분한 머리통을 깔끔하게 탈바꿈시키는 15분 남짓한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 소모전을 방불케 한다. 그 짓을 밥도 못 먹고 하루 온종일 해댄다고 상상해 보자. 돈은 둘째치고 얼마 못 가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산술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한 명 작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15분×하루 매상 20만 원을 맞추기 위한 커트 손님만 40명=600분, 만약 아침 9시에 첫 손님을 받았다 치면 저녁 7시 퇴근할 때까지 10시간 내내 쉼없이 커트만 해대다 날 저무는 꼴이다. 머리 깎는 기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얘기가 옆길로 새는데, 조수가 거들기는 하지만 몰릴 때는 하루 50~60명이나 되는 손님들을 일흔 넘은 노구로 감당해내는 부친이 놀랍고도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다. 참고로 부친 작업 속도는 1명 당 3~5분이다.

그럼 일타쌍피, 일거양득,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인 커트+염색 손님으로만 하루 매상을 채우면 좀 수월할까. 커트+염색 요금이 12,000원이니까 17명만 감당하면 20만 원 매상은 올리지만 커트보다 더 고역이 염색이다. 혼자서 커트하고 염색약 바르고 연달아 다음 손님 커트하고 염색약 바른 뒤 앞손님 머리 감겨주는 패턴을 거푸하다 보면 허리는 끊어지고 양팔은 떨어져 나갈 듯한 통증에 시달린다. 개업하기 전 염색약 바르고 샴푸하는 게 일과의 전부였던 알바를 1년 넘게 겪은 이력을 자랑하지만 서너 명만 몰려도 곡소리가 날 판이다. 즉 요령이란 게 없는 작업이라는 소리다. 그걸 온종일 반복한다? 하루면 몰라도 계속 하라면 다 도망간다. 퍼지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니까.

하루 평균 매상 20만 원 달성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규모라는 커트 30명 & 커트+염색 8명도 시간 안배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한꺼번에 몰리는 일 없이 적절하게 분산이 된 손님들을 상대한다면 체력 손실이 덜한 만큼 효율성 제고를 꾀할 만하니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될 리 없고 무엇보다 개업하고 단 한 번도 20만 원 일매출을 넘겨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입맛만 다실 상상일 뿐이었다. 그제 일요일 때 아닌 문전성시를 겪기 전까지는.

커트는 30명에 육박했고 염색은 8명을 훌쩍 넘겨 11명이나 발라 재꼈다. 아침 8시 점방 문을 열고 10시 첫 손님 받기 전까지 2시간, 늦은 점심을 먹던 오후 3시 반부터 4시까지 30분을 제외하면 단내가 나도록 커트하고 염색약 바르고 샴푸만 해댔다. 당연히 20만 원을 훌쩍 넘기는 매상을 기록했고. 개업 이후 최초다. 헌데 오후 6시 즈음 염색 손님 머리를 감기다 말고 "시마이해야겠습니다"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폐점까지 1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점방 문에다가 드나드는 사람 확인하려고 매달아 놓은 딸랑이 소리에 노이로제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는 손님이 무섭다고 느껴지자 미련없이 문을 닫고 점방을 떴다.

욕심이 과하다간 다다익선이 호사다마로 변할 공산이 크다. 그로기 직전까지 간 내 몸뚱아리가 그걸 말해주는 듯했다.

덧붙이는 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 안쓰러웠던지 손님 중에 사람을 부려야겠다고 진지하게 충고를 해주던데 정중하게 마음만 받았다. 그제 일요일 같은 날이 일 년의 한두 번뿐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채산이 전혀 안 맞으니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어서다. 주말마다 그제 일요일 같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면 그때는 고려하고도 남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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