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고리가 닿는 곳

by 김대일

2017년 3월 <은하철도 999>전展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는 기자회견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에 가는데 터널을 빠져나가며 마치 우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우주로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은하철도 999>를 구상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은 싫지만 서울 아니면 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전시회나 공연이 열릴 때면 상경하고픈 충동을 참느라 엄청 애를 먹곤 한다. <은하철도 999>전展이 열렸던 2017년 3월 어느날도 막무가내 역마살을 잠재우느라 고생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원작자까지 내한했다는 소식에 그를 만난다면 <은하철도 999>에 관해 궁금했던 두 가지를 ​꼭 물어보고 싶었다. '우주를 향한 동경을 키워준다더니 나는 왜 그리 공포스럽고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꼈을까요?', '메텔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상경할 엄두가 안 나는 여건이다 보니 분루만 삼키지만 마쓰모토 레이지를 앞에 두고 <은하철도 999>에 관한 내 생각을 털어놓는다면 이럴 거라며 블로그에다 휘갈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을 뿐이었다. 글은 이러했다.


들불 번지듯 행성의 모든 것이 급속하게 굳어 가는 절체절명에서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하늘로 날아오르고…

내게 <은하철도 999> 하면 떠오르는 잊지 못할 장면은 결코 어린이용이 아니다. 곧 반백살일 테지만 그때 그 장면만 떠오르면 주책맞도록 공포스럽다.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우주 전함 야마토> 등 이른바 레이지버스(마쓰모토 레이지+유니버스)로 통칭되는 마쓰모토 레이지의 유명 SF물에 열광하던 어깨동갑들과는 달리 레이지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 엇비슷한 캐릭터만 나와도 어마뜨거라 거부감부터 드는 히스테리는 아마도 그 장면의 여파로 인한 공포스러운 연상 작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소심한 심성을 자극해서인지 모른다.

대폿집 니나노 반주로나 어울릴 법한 일본 노래를 고스란히 베낀 청승맞기 짝이 없는 엔카 아류건 말건 김국환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압권인 주제가만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 너머까지 울려 퍼지도록 부르고 또 불러댔지만,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우주를 질주하는 시커먼 기차와 으스스한 메텔의 어둑침침한 블랙 코트는 딱지 덜 떨어진 어린것에게 우주를 향한 동경서껀 꿈과 희망의 메시지는커녕 세기말적인 허무와 절망만 이식시킨 채 유년기를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트라우마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불온한 애니메이션.

블랙 코트에 가려진 육감적인 나신을 상상한달지 우수가 서려 더 묘하게 야릇해 뵈는 얼굴선에 헨타이적 시선을 고정시키려는 작태가 따지고 보면 소싯적부터 잠재되었던 원초적 공포감을 어떡하든지 불식해보려는 꼼수였음을 이해해주길. 캐릭터가 발산하는 에로틱한 이미지에만 골몰하는 저급한 관음증적 충동에 기대어서라도 7080 세대라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은하철도 999>의 아련한 추억에 동참하고픈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외로워서 절박한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 제국의 부품이 될 기계 인간으로 만들려는 추악한 임무를 수행하고자 엄마 잃은 가련한 영혼에게 접근하는 사악한 여자가 드라마틱한 노정을 겪으면서 공허한 영생 대신 보통인간이란 유한한 인생의 가치를 테츠로(철이)가 자각하도록 인격 성장의 촉매로 변모한다든지, 모성 본능을 자아내는 보호자에서 동반자적 연인으로 관계의 미묘한 변화라든지 아둔한 나로서는 복잡다단한 메텔을 이해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무리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은하철도 999>전展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에 대한 기사가 조간(2017. 3. 27.)에 떴다. 원작자가 밝히는 원작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서 유심히 들여다 보다가 몇 가지 힌트를 얻었다. 예를 들면 메텔은 라틴어로 ‘어머니’란 뜻이고 메텔이 입은 옷은 ‘여행 중 많은 생명이 죽음을 당하는 데 애도의 의미를 담아 처음부터 상복을 입은 것으로 설정’했다는 따위.

마쓰모토는 “메텔은 청춘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철이가 보는 환상이기 때문에 <은하철도 999>는 청춘에 대한 송가”라고 정의했다. 혹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계 몸으로 바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는 것이다.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는다. 꿈은 시간을 배반하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한정된 시간을 악착같이 사는데 꿈이 배반할 이유는 절대 없다는 그의 단호함에 뜨끔한다. <은하철도 999>의 내 기억을 리셋할 때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마쓰모토 레이지가 별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향년 85세. 그의 딸은 "아버지는 평소 시간의 고리가 닿는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항상 말했다. 우리도 그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의 고리'가 슬픈 나를 어루만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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