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통통 튀는 목소리로 "손님은 아니고요" 운을 떼더니 지갑에서 목소리 만큼이나 주의를 끄는 샛노란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건 그 여자가 동래를 근거지로 한 부동산중개사사무소의 실장으로 맹활약 중이라는 걸 과시하는 명함이었다. 동래 공인중개사께서 이 먼 곳까지 왕림한 까닭이 의아스러울 즈음, 혹시 점방 내놓을 의향이 없냐고 대뜸 묻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도발인가 싶어 생면부지의 여자를 빤히 노려봤더니,
"제 고객이 이 부근으로 이사를 오실 예정인데 가까운 데에다 미장원도 차리고 싶어 하셔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여자 거간꾼의 고객은 남자 커트를 전문으로 하는 미장원을 열고 싶다고 했단다. 남자머리 커트 기술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안 꿀릴 자신이 있다면서. 하여 이사할 지역 주변 남성 커트점 매물을 일순위로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나 보다. 그길로 마땅한 물건을 찾아 발품을 꽤 팔았다나. 그러다 버스 다니는 도로변인데다 유동인구도 솔찮은 내 점방 입지가 탐나서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가 마침내 점방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제 고객 요구사항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곳이라 의향 타진 차 일전에 들렀었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구요."
이 여자 말하는 본새가 묘했다. 손님들로 미어터지는 점방은 아닌 게 분명하다. 손님이 오죽 없으면 평일에 문을 다 닫았을까. 안 되는 장사 억지로 붙들고 있지 말고 값 좋게 쳐드릴 테니 매물로 내놓으시라. 뭐 그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어이없는 느낌이랄까.
"여기 들어온 지 1년도 채 안 됐구요, 휴무날에 오셨나 보네요. 화요일은 쉽니다."
"아, 그러시구나…"
잠시 쭈뼛거리더니 섣부른 짐작으로 심기를 건드려봐야 이로울 게 없겠다 싶어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고서는,
"장사는 잘 되시죠?'"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해 더는 말 섞기가 싫은 나는,
"그럭저럭."
딴짓하며 우물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점방의 입지가 너무나도 아깝고 빈손으로 돌아가서 고객을 상대하는 건 죽기보다 싫다는 듯이 여자 거간꾼은 다시,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다들 아우성인데. 내놓으실 계획이 전혀 없으실까요?"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나이지만 인내가 바닥났다고 경고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잠깐 고민한 끝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대답없는 나를 보면서 무안해하는 여자 거간꾼은 치렁치렁하게 풀어 헤친 머리만 매만지더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대박나세요."
의례적인 끝말을 남기고 점방을 나서려다 말고 뒤끝이 영 찝찝했는지 전문가답게 깔끔하게 뒷수습하겠다는 심산인 양,
"휴무날 말고 다른 날에도 찾아왔었는데 그날은 손님이 되게 많더라구요. 하도 바쁘시길래 발걸음을 그냥 돌렸었지요."
그것도 센스랍시고 은근슬쩍 띄워 놓는다. 허나, 손 흔들어 봐야 지나간 버스요 시위 떠난 화살이다.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