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전철 간이 고요하길 바란다. 이기적인 사람이 안 되려고 나부터 가장자리 좌석만 고집해 앉고, 앉아서는 귀청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라디오 볼륨을 올린 이어폰을 장착한다. 그러고는 책을 읽든 멍을 때리든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한 채로 2호선 종점인 장산역까지 고요하게 가고자 한다.
점방 문을 닫아걸어 다음날 점방 문을 다시 열기까지 12시간이 채 안 되는 휴식은 하루의 피곤을 풀고 새롭게 활력을 북돋아 나를 재생시키는 데 그다지 긴 여유가 아니다. 퇴근하는 전철 안도 그 짧은 휴식의 일부이다 보니 단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은 바 지친 심신을 달래자면 고요가 필수적이다. 하여 내가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극도로 자중하듯이 대놓고 협조를 구하지는 못해도 같은 칸에 동승한, 아니 나와 같은 좌석에 앉은 사람들만이라도 나만큼 조심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막내고모뻘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 네 명이 부산스럽게 내 옆에 쪼로미 앉자마자 목적지(그들은 나와 같이 종점에서 내렸다)에 도착할 때까지 엔간해서는 절대 끊어지지 않을 대화의 끈을 서로 밀고 당겼다. 이이제이 심정으로 라디오 볼륨을 높여 소음騷音으로 소음消音을 해야 할지 입고 온 후드 티에 달린 모자라도 덮어쓸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와중에 중년 여성들 너머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잡상인의 등장이라도 알리듯 흥겹지만 경박한 트로트 메들리 가락이 제지없이 울려퍼진다. 이건 또 뭔가 싶어 쳐다보니 나이 지긋한 노친네가 경로석 칸을 몽땅 전세라도 낸 양 퍼질러 앉아서는 스마트폰을 스피커 삼아 방정맞은 음악을 아랑곳없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이대로 가다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그 칸의 반대 끝으로 향했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이 불쑥 떠올랐다. 새벽 한산한 전철 간, 누군가가 이어폰을 안 꽂고 동영상을 보는지 스마트폰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성이 소리 요란한 진원지에다 대고 일갈했다.
"아줌마, 소리 좀 낮춰요. 여기가 도떼기 시장인 줄 아슈. 아침부터 시끄럽게시리."
나의 이중성은 그 중년 남성에 투사되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모를 일이다. 성처럼 쌓아 놓은 내 고요가 무람없이 파괴된다면 나 역시 그처럼 도발적으로 변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