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심미안은 사회와 정치, 또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과 가치관, 통찰력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사진가에게는 남달리 풍부한 인생관과 철학이 요구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단순한 작업에 지나지 않지만,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셔터를 누르는 행위 이면에 숨겨진 사진가 자신의 내면적인 부분이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역시 사진가인 고故 최민식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과 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예술 분야이며 그 바탕에는 리얼리즘 정신이 깔려 있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과 시란 작가가 끊임없이 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항상 세상 일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두 사진가가 한 말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그들의 사진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닌 사실이란 조각조각을 모아 붙인 진실을 지향한다는 거다.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라고 할까.
구와바라 시세이의 <무언의 데모>(1965)에 대해 김창길 경향신문 사진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속의 순간들인 사진은 한편으로는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구와바라 시세이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무언의 데모> 사진 아래 '사진은 서울대생들로, 현재는 대부분 재벌기업의 중견 간부나 또는 고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적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 그것을 보는 사람,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들은 시간이 갈라 놓은 거리를 지나온 것이다. 한일협정 반대투쟁의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인 김지하 이외에 이런 이름들이 적혀 있다. 이명박, 이재오, 김덕룡, 손학규, 현승일…."(<한 발 물러서 찍은 '시대의 장면'…상상은 배가 된다>, 김창길, 경향신문 2019.03.24. 에서)
고故 최민식은 생전 인터뷰에서 <외발 신문팔이>(1985)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부산,1985. 시내 극장가에서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불구자가 성한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뛰면서 신문을 팔고 있었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버스가 들어오면 재빨리 달려가 하차 승객들에게 신문을 팔더군. 몸이 어찌나 날래던지. 외신기자들도 그의 모습을 여러번 촬영했다고 하더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더운 날에나 추운 날에나 한결같이 그 남자는 뛰었어. 삼 년 동안 이곳에서 일한 청년은 하루의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하더군. 어느 날부터는 그가 보이지 않는거야.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변두리에 구멍가게를 차려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내 작품 중에는 신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 신문은 당대의 기록이자 리얼리티 그 자체지. 신문이 사진 속에 피사체로 들어오면 사실성을 더 높이는 작용을 하지. 저 신문팔이 청년, 부디 복 받아 잘 살고 있어야 할텐데,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행복해야 할텐데, 요즈음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병들어 가는 세상이야. 몸은 불편해도 정직한 정신을 가진 저 청년, 저 얼굴을 한 번 유심히 들여다 보게..."
두 사진가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이 혹시 창백하고 건조해진 건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