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영 안 좋았다. 쉬는 화요일 담이 든 것마냥 명치끝이 결리더니 그게 다음날은 오른쪽 가슴 아래로 옮겨 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통증까지 더해 몹시 불편했다. 저녁 샤워를 하고 살펴보니 조그맣게 부스럼 비스무리한 서너 개가 느닷없이 가로로 이어져 나타나더니 다음날에는 오른 등짝에까지 두어 개 더 생겼다.
아예 몸져누울 정도는 아니어서 일은 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강도가 점점 세지는 건 물론이고 가렵기까지 했다. 재작년 마누라가 걸려 꽤 고생을 했고 그런 류의 광고 모델로는 썩 안 어울리는 마동석이 50대 이상 3명 중 1명꼴로 경험한다며 겁을 잔뜩 주는 광고가 이상하게 부쩍 자주 떠오르는 것이 혹시 이게 그 대상포진인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벌레에 물리거나 습진이 생겼다 하면 덧나기 일쑤인 내 예민한 피부를 감안했을 때 지난 여름 불쑥 나타나 몇 주를 고생한 끝에 사그라든 부스럼과 그 형태가 달라 보이지 않아 이러다 말겠지 하고 놔뒀다. 쑤시다 못해 찢어질 듯한 가슴쪽 통증을 담이라고 심상하게 넘기기엔 어째 찝찝하면서 두려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증상이 처음이니 무슨 병원을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과?
지난 금요일 매달 점방을 찾아주는 K형한테 증상을 얘기하니 형수가 걸린 적이 있어서인지 미심쩍어해서 그 부위를 보여줬다. 화들짝 놀란 형은 자기가 점방 보고 있을 테니 얼른 피부과를 가보라고 재촉했다. 고마운 마음만 받고 형을 보낸 뒤 부친 점방의 김 군을 불러 잠시 맡기고 피부과를 얼른 찾았다. 의사는 전형적인 대상포진 증세라고 진단을 내렸고 일주일간은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하며 경과를 지켜보면서 후속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대상포진에 걸린 사람치고는 젊은 축이라 예후는 좋을 거라고 예상한다는 립서비스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포진이 생긴 부위를 치료하는 사이 최근에 급격하게 활력이 떨어지고 자질구레한 병치레가 잦은 까닭이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치부하기엔 거리끼는 바가 적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몸 속 신경을 타고 척수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숨어 있다가 몸이 약해지거나 생체 내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을 때 다시 활성화되어 일으키는 병이 대상포진이라고 하면 부스럼이 띠처럼 생기는 게 이 병의 본질이 아니잖나. 바이러스 침범에 무력해질 만큼 약해진 면역 기능의 근본적 원인이 혹시 소싯적 몸을 마구 놀린 내 방종에서 비롯된 거라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마구발방으로 마구 설치더니 기력 떨어질 중년 즈음 그 여파가 몰려와 몸뚱아리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처량하고 회한이 더하다.
지난날 나는 나를 너무 가혹하게 대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의 미련 때문에 내 몸을 혹사시켰고 맘모니즘에 빠져 허황된 환상만을 좇다 정신을 낭비했다. 영원히 지속될 청춘인 줄 착각했고 그 헛된 믿음에 의지해 허랑방탕하게 세월만 허비했으니 후회는 늦은 감이 없지 않고 겨우 추스르려 애쓰는 탕아에게 돌아오는 건 밀린 청구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고장나는 고단한 몸뚱아리뿐이다.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하리오.
K형 앞에서 웃통 벗어 보이기 전 점점 골골해지는 중년의 육신을 화제로 삼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소싯적에 너무 헤프게 굴렸어요. 그러니 나이 들어 안 삐걱대는 데가 없지" 내 말에 형이 "굴릴 만해서 굴린 거야" 무심한 척해도 자책하는 나를 달랬다. 츤데레 형의 위로가 내 마음을 살포시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