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있고 집이 있어도 나는 정주하지 못했었다. 이상을 향해 끝없이 탈주하는 노마디즘과는 그 결이 전혀 다른 탕자의 방황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게 부질없는 객기였다. 나는 나를 너무 믿었다. 70의 능력밖에 없는 사람이 100의 자리에 가서 자기도 파괴되고 자리도 파탄난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내 능력 너머를 선망하고 가지지 못할 욕망만을 좇다가 이카루스의 추락을 끝내 맛보고야 말았다.
세상 만사가 덧없이 여겨지는 염세주의자로 전락한 나를 갱생시키자면 끊임없이 나를 회의하고 자성하면서 여생을 일이관지해야 한다. 하여 나는 10평 남짓한 내 점방을 마치 수행하는 수도원이나 도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5천 원짜리 커트로 버는 돈이 그간 가족들에게 끼친 좌절과 낙담을 얼마나 상쇄할는지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한 경제적으로 소용되는 놈이 되려고 애를 쓰는 건 내 수행의 일환이다.
내가 하루의 한 꼭지씩 일기처럼 꼭 써나가는 것 역시 일종의 수행이다. 나는 내 글솜씨가 얼마나 잡스러운지 잘 안다. 쓰다 보면 없는 기량도 늘고 그걸 밑천 삼아 작가의 대열에 끼고 싶은 속내가 없지 않았지만 실상은 무망하다. 과문한 나는 내 한계를 직시할 줄 알고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게 나한테는 오르지 못할 나무란 것 역시 절감하기에 차라리 자성의 기록으로 갈음하기로 방향을 튼 지 좀 됐다. 글로 뭔가를 이루고 싶은 얄팍한 이상이 아직 스멀거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도 안 하지만, 기념할 흔적(책) 하나쯤 남기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 그건 그대로 냅둔다.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얻은 걸 기화로 나를 되돌아본다. 내 과거는 얼굴이 화끈거리게 민망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을 나로 살기에는 지난날은 낙인 찍힌 주홍 글씨인 양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은 앞 40쪽 본문을 재해석하는 뒤 30쪽 주석을 달기 위한 수행이라 여기고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크다. 적막한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을 가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