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 앞 지상 주차장에 후면주차를 한 차가 보인다. 바로 그 앞엔 <전면주차! 매연은 싫어요>란 팻말이 말뚝 박혀 있고. 서너 살짜리 아이 키만 해 팻말이 보이지 않았다고 변명할 거면 한심할 만치 궁색하다. 당신 차만 빼고 다 전면주차를 한 건 차주들 키가 애만 해서인가. 보닛을 화단을 향하게 하는 전면주차를 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테다. 만약 획일적인 통일성에 반기를 들어 쾌감을 느끼는 정신이상자가 우리 단지에 살아서 후면주차를 일삼는 몰상식을 자행하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나는 그를 색출해 전출을 종용할 테다. 그게 아니라 차를 출발시키기에 후면주차가 전면주차보다 편하다는 이기심의 발로라면 나는 그에게 소설책 한 권을 선물하겠다.
마음이론(Theory of Mind)은 타인의 생각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쉽게 표현하자면 역지사지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기본 사양으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탑재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살면서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하면 이기와 독선, 혹은 무지와 방기로 인한 대인관계의 애로를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화단에서 서식하는 나무, 풀, 길냥이, 곤충, 1층 거주자까지 매연으로 고통받으리란 일말의 불인지심不忍之心조차 없으니 주저없이 전면주차를 했을 테고 하지 말란 짓만 골라서 하는 배운 거 없이 막되게 산 세상의 둘도 없는 호로자슥이라고 나한테 욕을 들어먹으니 말이다.
유명 출판사의 관계자(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라면서 소설을 읽는 것이 '마음이론'의 유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일단 공감하는 게 전제되고, 읽기를 마치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공감을 돌려받게 되니 좋은 훈련이 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소설이 왜 필요한가>,한겨레, 2020.07.04)
저명한 출판 마케터(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도 소설적 상상력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고 자신의 상상력을 키우게 해서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만 보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엇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새로운 계급사회와 소설적 상상력>, 경향신문, 2018.09.11.)
물론 당신이 보기에 재미도 감흥도 함량 미달인 소설이 없지는 않겠으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작가는 단 한 줄의 소설도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소설 한 편이 건네는 묵직한 효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전면주차를 해야 하는 이유에 공감할 줄 아는 역지사지형 인간임을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