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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에서 스지로 이어지는 연상 작용

by 김대일

동네에 <세실 부락>이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곰탕 전문점이 있다. 동네(해운대 신시가지)가 조성된 직후인 1999년에 문을 열었으니까 사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직접 담근 김치와 참기름 아끼지 않고 버무린 정구지무침이 소담스러운 건 한결같고 여느 곰탕집 메뉴와 다를 바 없는 곰탕, 설렁탕, 꼬리곰탕, 도가니탕이라도 그 맛이 난잡하지 않고 끼끗하다. 먹고 나면 모자란 감이 없지 않지만 살짝 아쉬운 그 결핍이 거기를 자꾸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싶다.

쉬는 날 <세실 부락>에 들러 도가니탕이라도 먹으면서 보양에 힘쓰라고 부친이 용돈을 하사하셨다. 대상포진은 내가 걸렸는데 부친이 더 놀라신 것이다. 잘 먹어야 낫는 병으로 아셨는지 해운대백병원을 내왕하면서 맛을 들인 <세실 부락> 도가니탕이 보약 못지않다고 여기신 게 분명하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에 도가니탕 가격도 배길 수가 없었는지 3~4년 전 16,000원 하던 게 20,000원이나 뛰어 몸보신하려다 집안 기둥뿌리 뽑히기 십상이라 특식이면 모를까 즐겨 먹기는 부담스러운 음식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럴 때는 부모님 말씀을 참 잘 듣는 나라서 모처럼 돈 걱정 덜고 발걸음도 가볍게 찾을 수 있었다. 호주머니 두둑하겠다 도가니탕 대신 가격이 무려 2천 원이나 더 비싼 도가니, 꼬리, 양지까지 곁들인 모듬곰탕을 호기롭게 시켜 먹었다.

뚝배기 속 고기 쪽이 하나씩 없어지는 게 너무 야속해서 아주 천천히 씹으려 했지만 입에 착 감기는 풍미에 홀려 금세 한 그릇 뚝딱해 버렸다.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다 비운 뚝배기 바닥을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한 자락을 기어이 잡고 만다. <석로石爐>, 즉 '돌난로'라는 뜻의 상호가 <세실 부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바늘 따라 실 가듯 도가니 하니 떠오르는 게 스지수육이다. 이제는 다른 점방이 터 잡은 지 오래인 동네 재래시장 어귀의 <석로>라는 주점에서 내놓던 스지수육은 식감 쫄깃쫄깃하기로는 도가니에 버금가는데다 무엇보다 내 영혼을 충만시키기에 충분한 소울푸드여서 각별했다.

녀석과 <석로>에서 만나면 늘 스지수육을 시켰다. 녀석한테 얻어먹는 주제에 제일 만만한 메뉴로 스지수육이 제격이었고 술안주로도 입맛에 맞았다. 녀석은 공사다망했음에도 때때로 짬을 내 나를 만났다. 해운대 달맞이언덕 유명짜하던 대형 찜질방 관리과장 자리에서 2년도 채 안 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둔 나를 소유주 가족들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그 자리에 기어이 앉힌 이가 그 녀석이었다. 자리 마련은 녀석이 했지만 자리 보전은 내 몫이었으므로 내 사직의 책임을 녀석한테 물을 까닭이 없었는데도 녀석은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권한 사람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모시던 노老 회장의 시시콜콜한 대소사를 주관하다 속절없이 보내 버린 20년 세월의 노고를 위로받고 싶어서 녀석은 나를 찾았는지 모를 일이다. 2년이 채 안 되게 근무하는 동안이었지만 녀석이 얼마나 치열하게 밥 벌어 먹고 사는지를 가까이에서 목격한 유일한 친구였으니 얼추 말이 통했을 수도 있었겠다. 스지수육을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잔을 치는 두 친구는 동병상련까지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여워할 줄 알아서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때 그 스지수육이 나를 지금껏 훈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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