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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

by 김대일

후면주차는 습관이다. 늘 그리 대는 사람만 댄다. 신신당부를 하는데도 후면주차만 우기는 차주의 심보가 궁금하다. <전면주차! 매연은 싫어요>라는 주의 팻말은 심심해서 걸어놓은 게 아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과 면한 꽃밭에는 나무와 풀, 벌레, 고양이, 새들이 터 잡고 있고 1층 거주자들에 한해 그 세상과 공존하는 처지다. 그들은 엄연히 입주민들과 똑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다. 전면주차는 꽃밭에 붙어사는 생명체들이 매연이라는 오염 물질로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양생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배려인데도 보기 좋게 묵살당한 것이다.

'마음이론(Theory of Mind)'에 따르면, 타인의 생각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즉 역지사지할 줄 아는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랬다. 원래부터 탑재해 있는 기본 사양이 아니라는 소리다. 사는 동안 능력을 깨워서 충분하게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이기와 독선에서 기인한 방종이 고질이 되어 버려 다른 이는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짓을 버젓이 자행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후레자식으로 등 뒤에서 손가락질 당해도 모른다. 이런 만무방은 제 차 배기구에다 그 면상을 들이대봐야 전면주차를 왜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닫는 족속이다. 하등 벌레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치들이 제아무리 삐까번쩍한 고급 세단을 몰면 뭣하나.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품격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나 다름없지.

'마음이론' 유지 개선에 소설 읽기가 도움이 된다고 어떤 신문 칼럼에서 읽었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일단 공감하는 게 전제되고, 읽기를 마치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공감을 돌려받게 되니 좋은 훈련이 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라나(김영준 전前 열린책들 편집이사). 또 다른 이는 소설적 상상력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고 자신의 상상력을 키우게 해서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만 보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우리집 책장에서 소설책을 꺼내 와 후면주차한 차 보닛에다 올려 두고 '화단의 나무, 풀 , 벌레, 고양이, 1층 거주자들이 당신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걸 깨닫자면 소설만 한 게 없답디다'라는 메모까지 덧붙이겠지만 <전면주차! 매연은 싫어요>라는 팻말도 무시하는 후안무치들이 라면 끓인 냄비 받침대로나 소설책을 전용할까 두려워 생각을 그친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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