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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와 통화는 안 하는 편이

by 김대일

매달 1일 월세를 내고 격월로 수도료도 낸다. 송금만 하고 말라니까 어째 밋밋하고 삭막해서 문자도 동봉한다. 이렇게.

'계좌로 월세와 수도료 방금 송금했습니다. 확인하시고 이상 있으면 바로 연락주십시오.

덕분에 지난 3월 무탈하게 보냈습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십시오.'

가끔 답이 온다. '고맙습니다'나 '수고 많으셨습니다'로 단답형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맞장구를 쳐줘서 내가 다 고맙다. 건물주와 이런 식으로 유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다. 그렇다고 월세를 깎아줄 건 아니겠지만 아래윗집으로 오다가다 마주치면 배시시 웃는 낯이 뻣뻣한 거리감을 한결 눅이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면 그게 어딘가.

격월로 내는 수도료를 알려주지 않아 3월 마지막 날 건물주에게 연락했다. 안 받았길래 퇴근하면서 다시 걸려던 참에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1층 커트점이라고 밝혔는데도 경계하는 기색이 수화기 너머로 역력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는 긴장감까지 맴돌았다. 수도료를 알려달라는 용건으로 연락했다고 하자 긴장의 끈이 풀렸는지 목소리가 얌전해졌다. 바빠서 알려주는 걸 깜빡했단다. 지불할 요금액을 듣고 더 잔말 안 하고 끊어 버렸다. 입에서 쓴내가 났다.

며칠 전 하수구 물이 막혀 국수집 이모가 건물주와 통화한 녹취록 들은 게 기억났다. 그때 들었던 건물주 목소리는 서슬 퍼렜다. 건물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세입자가 건물주한테 전화를 할 때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어서라는 통념을 건물주는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자 보수를 요청한다든지 지불 건에 대한 의견 차를 세입자의 잇속대로 조율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건물주 뇌리에 박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가도 막상 통화 속 목소리는 매정하다 못해 비정할 정도로 돌변하는 게 혹시 전화라는 장치가 주는 익명성의 도발을 지레 걱정해 치는 장막이라면 참으로 씁쓸하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세입자는 얼굴 보면서 얘기하는 게 아니니 말투는 매서워지고 그 말투에서 불거지는 건물주의 빼도 박도 못할 실수를 주워 담아 행여 생길지 모를 불화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나름의 자구책이라면 교활하기 그지없다. 건물주와 통화할 적마다 녹취를 해대는 국수집 이모의 행상머리가 같은 세입자로서 자기방어의 수단이라 편들어 주고 싶어도 빈축을 살 수밖에 없는 과잉행동인 건 분명하다.

아무튼 엊그제 건물주와 통화하면서 결심한 게 있다. 정말 부득이하지 않으면 내 쪽에서 결코 먼저 연락하지는 않으리라. 상대방 편의를 봐주려는 선의임에도 상대방이 떨떠름하게 나오면 나도 감정 있는(과해서 탈인) 사람인지라 기분이 영 별로다. 스트레스를 부러 만들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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