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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4/2 일요일 아침 7시부터 하루 온종일(17시간) KBS FM라디오에서는 공영방송 50년, 클래식FM 개국 44년을 기념하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년 04월 01일~1943년 3월 28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라흐마니노프 특집> 방송을 했다. 라흐마니노프 '빠'들로서는 귀호강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나도 라흐마니노프 '빠'다.

Eric Carmen은 라흐마니노프 곡을 가지고 노는 데 재능이 많았던 팝가수였다. 그가 라흐마니노프 작품의 멜로디를 똑 떼내 만든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얻었고 개그콘서트 <뮤직토크>라는 코너에서 ‘오빠 만세’라는 유행어로 재탄생시킨 개그맨 박성호를 명실상부한 개그콘서트 간판 중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의 멜로디를 따온 <All By Myself>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Eric Carmen은 또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소재로 삼은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란 노래도 히트시켰다. 이쯤되면 가히 경이적인 수완이다.

내가 라흐마니노프에 본격적으로 매료된 건 아마 6~7년 전이지 싶다. 가망이 없던 민락동 포차를 접고 친구 주선으로 들어간 찜질방 관리과장 자리마저 2년이 채 못 돼 자의 반 타의 반 내몰린 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라는 허명을 얻어 의탁하던 시기였다. 병원 구석진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기만 하는 협동조합 사무국장을 간호부장이라는 여자는 백안시했고 그 멸시와 홀대가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일다운 일을 하는 직원이었고 나는 그녀가 병든 노인을 수발해 번 돈을 축내는 더부살이 신세였으니까. 당장이라도 병원 문을 박차고 떠나고 싶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나는 늘 부끄러운 낯으로 출근해 송구한 마음으로 퇴근했으며 차마 맨정신으로는 귀가할 수 없어서 선술집을 전전하며 울분을 달랬다.

작취미성昨醉未醒인 몸뚱아리로 겨우 출근 버스에 오른 그날도 어김없이 이어폰을 낀 채 시린 속을 달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50분 정도 걸리는 버스 간에서 소음騷音을 소음消音하려는 의도로만 듣던,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흘려들은 덕에 귀에 익어 반갑긴 하지만 감미로운 멜로디에 비해 음악 제목은 되뇌기가 성가시고 그걸 작곡한 음악가조차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클래식 음악이었는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라는 음악가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느닷없이 나를 각성시켰다. 술기운을 일거에 풀어주는 북엇국처럼 말이다. 그걸 감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미묘했다. 뭔가가 크게 와닿아 마음을 사로잡긴 했는데 벅찬 기쁨이랄지 즐거움 따위는 아니었다.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내게 선사한 건 그런 긍정적 에너지와는 결이 좀 다른 카타르시스였다. 그게 무슨 감정인지 한참을 고민해도 정의내리질 못하자 급기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파고들어서라도 그 정체를 밝히려고 용을 썼다.

격변하던 러시아 정세 속에서 불우한 가정 형편, 교향곡 1번의 참담한 실패, 그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 등 계속된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험이 보다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견해(한상우,『한상우의 클래식 FM』, 북랩, 229쪽)는 인간계를 초월한 예술적 초인의 영웅담처럼 들려 거슬린다. 인구에 회자되는 불세출의 명작치고 고난과 시련의 산통 끝에 배태되지 않은 게 없고 간난신고를 예술적 창조로 승화시키지 못하면서 예술가 축에 낄 수 있을지 회의적이어서다. 차라리 차이코프스키의 낭만주의를 계승하고 있지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서 느껴지는 광기 어린 열정, 혹은 극단적인 비극성을 라흐마니노프에게서 만나기는 어렵고 그보다는 좀더 순화된, 어찌 보면 약간 차가운 느낌마저 감도는 낭만성, ‘귀족적인 침울함’이 여실하다는 의견(문학수, 『더 클래식 셋』, 돌베개, 175쪽)이 오히려 반갑다. 슬라브적 감수성의 전통을 계승하되 고스란히 답습하기보다는 그 전통에 기반해 모던한 재해석을 시도한 참신성 혹은 반항정신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더 납득이 간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혁명의 고국을 떠나긴 했으나 향수에 시름겨워하던 처지, 비즈니스에만 몰두해 사람을 들볶아대는 정 떨어지는 망명지 미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혹독한 스케줄을 감수해야 했던 생계형 비르투오소 작곡가의 비감이 생래적인 슬라브 특유의 애수와 결합해 신경질적인 서정성으로 표현되었다는 데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라흐마니노프를 발견하였고 내가 왜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지 결정적 힌트를 얻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일상, 꼭 죄인마냥 굴신해야 했던 협동조합, 무너지는 자존감 따위 일신을 짓누르는 굴레에서 허덕이던 즈음 기적처럼 들이닥친 라흐마니노프의 '차가운 낭만성', '신경질적인 서정성'이야말로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자 축복이었다. 웃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라흐마니노프 생전 사진 속에 드리워진 냉소적 우울마저 닮고 싶은 견강부회를 일삼으면서까지 그에 대한 충성심을 아끼지 않는 내가 이후로 라흐마니노프 '빠'가 아니 되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을 달아서 줄창 들을 때가 있다. 감당이 안 되게 짖어 대는 빌어먹을 블랙독이 엄습하기라도 하면 고민없이 라흐마니노프에다가 처박아 질식시켜 버리는 게 요즘 내 울증 해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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