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머리를 누가 깎는지가 커트점 들르는 손님들한테는 가장 신기한 주요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근질근질한 입을 참다 못해 겸연쩍게 물어오는 손님이 그다지 별쭝맞지 않은 건 개업하고부터 똑같은 질문을 수다히 들어서겠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 또한 한결같다.
- 다른 점방 가서 깎지요.
뜻은 같은데 제법 의미심장한 수사로 준비한 버전이 따로 있긴 하다.
-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지요.
천하의 가위손이라고 해도 거울 보면서 제 머리 깎았다는 소릴 들어본 적 없다. 점원이 딸린 점방이면 상대의 기량을 존중하며 서로 깎아줄 수 있겠다. 허나 나처럼 주인이면서 점원인 1인 점방은 천상 다른 커트점 가서 거기서 책정한 요금을 고스란히 지불하고 머리를 맡기든가 아니면 친분 두터운 동료 깎새 원장 점방엘 빈손으로 가기는 멋쩍으니 자양강장제 한 박스라도 쥐어 주면서 슬쩍 커트 의자에 앉아서는 '머리가 왜 이 모양이지? 연습 삼아 골라주시라'며 수작을 걸는지도 모른다.
'깎새 머리는 누가 깎지?'라는 질문은 의외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게 인생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으면서 무기력한 자기를 보완해 줄 불가결한 존재로 타인을 재정의해 관계성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는다. 인생은 투쟁이라는 호전적인 구호를 앞세운 독고다이 정신은 기껏 머리에 난 털도 스스로 못 깎는 현실 앞에서 쭈그러든다. 역경을 극복하겠답시고 한 손에 바리캉 다른 한 손에 빗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간 머리를 확 밀지 않는 이상 쥐파먹기 십상이다. 이런 걸 두고 쓰잘데기없는 만용이나 같잖은 오기라고 한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내 머리 내가 못 깎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가장 객관적인 위치에서 스타일에 맞게 깎아 주는 다른 커트점 원장한테 내 머리를 맡긴다면 굳이 안 겪어도 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