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타서 물을 찾는 목소리

by 김대일

기다리기가 지겨웠던지 대기석에 앉은 손님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노래를 틀었다. 빵빵하게 켜놓은 TV 볼륨에 더해 점방 안은 일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만약 그가 시답잖은 뽕짝에 겨워했다면 당장 그 니나노를 집어치우라고 점방 주인의 위엄을 과시했을 테지만 하필 배호의 <누가 울어>라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으로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라는 대목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나를 발견한다. 아, 이런 식으로 배호를 영접하는구나.

배호 노래만 들었다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배호처럼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 형은 트로트 메들리를 구성지게 뽑았다. 고교 동아리 한 해 위 선배였던 그가 부르던 트로트 메들리를 동아리 행사 때 두어 번 들었을 뿐인데도 내 뇌리에 주름이 깊이 파이게 인상적이었다. 당시 호응이 폭발적이었던 데는 탁월한 레퍼토리 선정이 한몫 했을 거이다. 거기에 곡에서 곡으로 넘어갈 때 그 간드러진 이어짐은 환상적이었으며 아직 덜 여문 나이였음에도 중후한 중저음이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거이다. 트로트가 사람 애간장을 녹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조 형이 부른 메들리곡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고 당사자한테 직접 묻자니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지 오래라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다만 서글픈 중저음의 바이브레이션이며 슬쩍 보헤미안적인 조 형의 기질로 미뤄 보건대 형이니까 골랐을 곡들 중에 배호 노래가 레퍼터리에 안 끼면 구색이 영 안 맞을 것 같긴 하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누가 울어> 뭐든 간에 말이다.

「그 악사樂士의 연애사」라는 단편소설에는 첫사랑이 생각나면 배호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배호 노래의 특징을 '목이 타서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창법'이라고 했다.

나무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배호는 사주에 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평생 갈증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저렇게 물기를 찾아 방황하는 목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수음水音이라고 한다. 수음의 특징은 어둡고 축축하다…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한창훈, 『그 남자의 연애사』, 문학동네, 213쪽)

배호나 조 형은 남은 자들의 심금만 울려 놓고서 이른 나이에 먼저 떠나 버렸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시니컬하면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던, 나로서는 달리 규정짓지 못하는 고독감에 휩싸였던 생전 조 형이었기에 목이 타서 물을 찾아 헤매는 배호의 노래는 안성맞춤이었을지 모른다. 어둡고 축축한 수음을 타고난 배호 노래만 불렀다간 그걸 듣는 어린것들이 무슨 몹쓸 짓을 벌일지 모르니 돼먹잖은 뽕짝 메들리를 섞어 환심을 샀을 뿐인데 그게 뜻하잖게 형의 시그니처가 됐다. 바리캉을 잠시 멈추고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를 속으로 따라불렀다. 난데없는 배호 목소리로 울컥 치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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