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국수집 맛있냐고 손님들이 물어오면 즉답을 피하고 우물쭈물거리다가 "이웃인데 별로라고 말 못하잖아요" 눙친다는 게 겨우 이 정도다. 딱 한번 거기서 국수와 김밥을 먹었었다. 맛 감별이 서투른 내 입맛에도 마뜩잖은 맛이었다. 음식 맛만큼이나 점방 분위기도 밋밋했다. 한 자리에서 국수집을 6년씩이나 했으면 묵은 사연이 처처에 서려 있어야 할 테지만 목청만 크고 알맹이는 없는 수다스러운 이모마냥 값없고 휑하기만 했다. 하여 재미는 없이 허기만 때우다 마는 거기서 다시는 음식을 안 사 먹는다.
나는 특별히 맛집에 대한 기준이 없다. 어떤 음식 만화를 보면 가장 맛있는 음식 찾는 일을 목적으로 하더라. 나는 맛이 목적은 아니다.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식당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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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그리고 재밌는 사람들이 있는 식당, 나는 그런 곳이 좋다. 음식은 맛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본다. 한번 가고 나서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 좋다. (구스미 마사유키,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2018.06.02.)
『고독한 미식가』 스토리 작가인 구스미 마사유키가 한 말은 내가 맛집을 고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대기표를 받고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는 식당은 절대 삼가한다는 게 내 철칙이다. 바람의 파이터가 도장깨기하러 다니듯 유명짜한 맛집을 섭렵하려 드는 식도락가의 내공과는 거리가 먼 데데한 입맛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성찬의 유혹보다는 우선 먹고 마시는 짓 그 자체에 더 방점을 찍는 내 식습관으로는 먹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주객전도를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다. 요는 혼자 먹든 여럿이 먹든 일체의 간섭을 배제하고 음식 먹는 순간에만 전념하는 것, 하여 허기진 영혼이 잠시나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개런티를 제공하는 곳이야말로 경건한 식음의 의식으로써 의미가 크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 더. 구스미처럼 나 역시 식당에 숨은 이야기가 있나 없나 하고 두리번거린다. 손님을 응대하는 주인장의 말본새나 태도, 식당 메뉴판, 부착물, 하다못해 쌓여 있는 신문이나 잡지책 따위를 뒤지면서 식당이 걸어온 연혁을 추리하는 건 나만의 쏠쏠한 재미다. 용케 주인장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일껏 미루어 짐작한 것들이 거진 공상에 그치지만 그마저도 소소한 재미로 기억돼 그 식당을 또 찾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구스미는 ‘재미’라고 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사람들은 보통 위대하고 감동적이며 슬픈 것들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반면, 재밌다고 하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인식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재미 자체가 인간을 위로하기도 한다. 고로가 식사할 때 재미를 느끼는 것과 같다.”
혼술을 즐길 건강 상태가 아니어서 한동안 발길을 끊은 빈대떡가게 여주인이 문득 떠오른다. 화이트보드판에 마카펜으로 대충 휘갈긴 메뉴 중에 하나를 주문하면 음식 기다리는 동안 물김치와 삶은 계란 한 알, 콩나물무침을 전채로 내놓는 우리집 근처 상가 지하 빈대떡가게 여주인은 결코 먼저 말 섞는 법이 없다. 테이블 4개로 꽉 차는 조붓한 가게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압도적이지만 나는 내내 즐거웠다. 나사가 확 풀린 기분으로 집착 수준인 명태찜을 안주 삼아 잔을 기울이는 호젓함을 그 좁아터진 아지트에서 맘껏 누리는 재미가 나를 위로해주곤 했으니까. 포만감에 행복해하는 고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