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살 아프면서 살자

by 김대일

열흘 전부터 오른손 중지 손톱 주변이 까닭 모르게 쑤시다가 부어오르더니 급기야 누렇게 곪아갔다.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고 연고를 덕지덕지 발랐는데도 차도는 없고 젓가락질, 가위질, 글자 쓰기 따위가 버거워지자 결국 지난 월요일 급히 병원을 찾아 고름을 짜내고 처방약을 받았다. 헌데 한시름 놓았는가 싶더니만 엉뚱한 데서 탈이 났다. 처방해 준 약을 먹었더니 이번에는 위장장애가 일어나고 만 게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메스꺼움과 구토로 이어져 온종일 초주검이었다. 작년 임플란트 시술하느라 치과를 들락거릴 때도 똑같은 증상이 일어나 엄청 고생한 적이 있었다. 치과와 피부과 처방전의 공통점은 페니실린계 항생제였다. 흔히 페니실린계 항생제 부작용이라고 하는 대장염, 설사, 구토 따위가 딱 내 꼴이라서 말이다. 항생제를 바꿨지만 이후로 약을 안 먹었다. 뜨거운 물에 덴 놈이 숭늉 보고 놀란 격이었다. 약 안 먹고 차라리 더디 낫지 끔찍한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부쩍 는 잔병에 심란해진다. 위장 안 좋다는 소리는 약방에 감초 격이고 목과 어깨가 자주 경직돼 정기적으로 부황 뜨고 어혈하지 않으면 현기증의 공포가 일상을 덮어 버리질 않나 근자에는 대상포진이다 손가락염증이다 해서 피부과 병원 문턱이 닳을 지경이다. 잔병치레가 자연스런 노화현상이라고 눙치고 넘어가기에는 그 빈도와 종류가 너무 잦고 다양하다. 가족들 보기 민망하고 미안하다. 작년 2월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든 소회를 짤막한 글로 남겼었는데 그 중 일부는 이렇다.

(…)

나이를 먹을수록 병치레가 잦아지다가 옴나위없이 불치의 중병에 걸려 암담해지는 게 우리네 운명일지 모른다. 하여 안 아프게 여생을 누리겠다는 기원이야말로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으리. 차라리 안 아플 순 없다고 마음을 푹 내려놓는 게 더 나을지도. 대신 아프되 살살 아픈 방법을 궁리하는 게 속 편한 처신이지 않을까도 싶다. 이런 원칙을 세워 보는 건 어떨까.

잔병치레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시난고난하지는 말 것. 서럽지 않을 정도로만 아프기. 가족이 병수발든답시고 일상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불상사가 절대 없도록 요령껏 아프다 말기 따위 말이다. 인명은 재천이랬으니 내 맘대로 아픈 때를 정하고 아픈 정도를 조절하는 건 당치도 않지만 나나 내 가족이 최소한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라는 산 송장 취급은 안 당하게 살살 아픈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한 것 같긴 하다. 그런 바람을 가지고 하는 운동이 더 신통한 효과를 낼 것이고 안 아프게 예방해주는 약이 설령 한 움큼 가득이라도 흔쾌히 꿀꺽 삼킬 수 있을 테니.

안 아플 수는 없으니 제발 살살 아프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절실하다.

작가의 이전글오늘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