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시선

by 김대일

커리어 우먼이 맵시를 뽐내는 오피스 룩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옆을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동선에 시선이 따라가지만 자칫 엉큼한 성적 충동에 홀린 '변태'로 오인하는 주변의 서슬퍼런 눈총을 의식할 줄 아는 주변머리는 있다. 요염하고 관능적인 자태에 넋이 나가는 것까지 통제할 수야 없지만 여성의 신체를 관음증적으로 응시하여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시선 폭력'은 범죄다.

토플리스의 사회화 과정을 연구했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코프만은 2년간 현장조사를 통해 "육체란 현실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노출 여성에게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자존감을 높이려는 의식이 꿈틀댄다는 것이다. 특히 35~40세 여성이 토플리스 욕망이 가장 강했다. 삶에 대한 자신감과 젊음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큰 탓이다. 코프만에 따르면 해변의 토플리스 여성과 이를 바라보는 남성 태도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단다. 토플리스 여성이 걷거나 뛰는 건 금기다. 주로 앉거나 누워 있어야 한다. 남성은 쳐다보되 슬쩍 한 번에 그쳐야 한다. 가슴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한 여성을 '집중'해서 보면 안 된다. 말하자면 다른 대상을 향하는 듯 슬쩍 쳐다보는 중립의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시선 폭력>, 한국일보, 2017.05.18. 인용)

연휴 마지막날인 일요일 새벽 출근 전철 간이었다. 환승역인 서면역에서 젊은 여성 세 명이 내 맞은편 좌석에 우르르 몰려 앉았다. 새벽 기운이 아직 쌀쌀한데도 그들 입성이란 게 하나같이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룩이었다. 그 중 한 여성은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만큼 상체를 숙이고서 옆자리 동료와 얘기를 나누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놀이공원 입장권 팔찌 같은 걸 손목에 차고 있었는데 서면역 부근에 놀이공원 생겼다는 소문을 들은 적 없어서 그 팔찌의 정체가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필이면 내 앞에 펼쳐진 장관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서면역에서 목적지인 개금역까지는 네 정거장이면 도착하지만 10분이 채 안 걸리는 그 물리적 시간이 나한테는 부지하세월이었다. 매혹적인 여성의 육체를 사랑해서 얼핏 봐도 갓 20대인 여성들의 건강미 넘치는 시스루 육체를 아주 가깝게 목도하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자 행복일 법 하지만 실은 무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른바 다른 대상을 향하는 듯 슬쩍 쳐다보는 중립의 시선을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까닭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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