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ut des(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L이 죽던 날은 모처럼 편하게 한 잔 하려고 K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월요일 오후가 가장 편하다는 소릴 내가 언제 지껄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귀담아들었다가 휴가를 냈다는 K가 연락이 온 건 이틀 전 토요일이었고 녀석의 그런 배려가 미치도록 고마웠다. 월요일 아침, K가 다시 전화를 해 와 L의 부음을 전했다. 급작스런 비보를 접한 나만큼이나 충격이 컸을 K였다. 그날 저녁 같이 조문을 하고 수요일 장지에도 동행했다.
L과 K는 학과 동기들이다. 둘 다 교육계에 종사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L이 신망 높고 잘 나가는 정교사로 승승장구했던 반면 K는 기간제 교사라는 벽에 부딪혀 고배만 흠씬 들이켜고 교단을 떴다는 점에서 둘의 교육자 역정은 딴판이었다.
나는 K를 내 글에 자주 언급했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제 잇속 못 챙기는,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곰과 소가 흘레붙어 나온 새끼' 같은 K를 안쓰럽게만 여겼었다. 하지만 녀석의 굴곡진 인생이 세상과 타인을 타산적이고 가식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천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녀석이 얽힌 여러 비화를 통해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녀석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진심으로 기원한다. 파란만장했던 전반생을 밑거름 삼아 후반생은 보다 유여하기를. 다행히 늦은 나이임에도 2년 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녀석의 일상은 전보다는 탄탄해졌고 녀석만의 장밋빛 장래를 꿈꿔 볼 만해졌다.
L을 묻고 장지를 떠날 때 나는 K의 차를 탔다. 새벽잠을 설쳤다는 K의 얼굴은 푸석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이별을 감당하기가 K나 나나 너무 벅찼던 게 사실이다. 무거운 침묵이 심신을 더 조이기 전에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듯 우리는 옛일을 하나씩 들춰내 뇌까렸다. 단물 다 빠진 껌 같은 과거지사를 두고 한참을 헤실거린 끝에 K가 말했다.
- 너라도 있으니 좀 낫다.
고마웠지만 내가 할 소리였다. K라는 인간 덕에 나는 친구도 없는 각박한 인간이란 비난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 중신아비를 자청해서라도 미적미적거리다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지 모를 녀석을 구해주고 싶다. 아니, 녀석이 요청하는 거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뭐든 들어줄 테다. 하여 친구 위할 줄도 아는 놈이라는 공치사를 듬뿍 듣고 싶다. K는 내게 그런 녀석이다. 미련곰탱이 같은 게.
친구여,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자신의 안부를 확인받았네만(Si vales bene valeo) 이제부터는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주기로 한다(Do ut 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