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이 전혀 없는데다 낌새마저 이상했지만 토요일 매상이 신통찮은 관계로 그냥 의자에 앉혔다. 또박또박한 발음에 비해 운신이 영 버거워 보였다. 짧은 스포츠형을 주문한 뒤 제 집 소파에 눕듯 의자에 폭 파묻히는 품이 한잠 푹 잘 기세였다. 꾸벅꾸벅 조는 머리를 연신 제자리로 갖다 놓으면서 깎는 데 열중하려 애썼지만 진동하는 문뱃내가 거슬렸다. 토요일 대낮에 얼마나 퍼마셨길래 저 지경이람.
취객을 들여서는 안 되는 게 이 바닥 불문율이다. 취기로 제 몸 못 가누는 이를 상대로 날카로운 가위나 면도칼을 잘못 들이대다간 어디가 잘려도 잘릴 위험이 다분해서다. 괜히 손님으로 들였다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 조심조심해서 깎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작업을 끝내고 잠이 든 손님을 깨웠더니 호주머니에서 명함 지갑 같은 걸 주섬주섬 꺼내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카드를 꺼내는가 싶어서 요금이 워낙 싸서 카드 단말기가 없다고 했더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갑만 멍하니 쳐다보더니 "현금밖에 안 돼요?" 되묻는다. 알콜기에 완전히 포위됐는지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엉덩이만 들썩들썩거리는 중늙은이한테 계좌이체는 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건 무리다. 계좌이체가 뭐하는 물건인지 안다고 해도 자기 몸조차 제대로 못 가누는 인간이 정신머리가 온전할 리 없다. 모바일뱅킹앱을 열든가 은행 고객센터로 연락해 일련의 이체 과정을 수행할 만한 정신머리였다면 저토록 고주망태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 돈을 찾아서 드려야겠네 그럼.
- 요 옆에 농협 있던데 갔다 오세요.
- 같이 가입시더.
- 점방은 누가 봅니꺼?
겨우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휘청거리는 두 다리로는 은행 가다가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뚫린 입이라고 "사장양반, 사람을 믿으세요!"란다.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개업하고 이틀인가 사흘 지났을 무렵 땡전 한 푼 없는데 일자리 면접은 봐야 해서 취직하면 후사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인간을 공으로 깎아 준 뒤로 1년만에 무료 봉사를 한 셈이다. 그깟 5천 원 없는 셈 치면 된다. 허나 술에 절어 인생을 낭비하는 작태만은 졸렬하기 짝이 없다. 한 번뿐인 인생,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 민폐 끼치는 말종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