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새로 생긴 위 선종을 제거하러 지난 주 3박4일 간 해운대백병원에 입원하셨다. 시술 이후 예후를 살피러 다시 병원을 찾은 그제 화요일. 진료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 지하 식당가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부친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하루에도 생각의 탑을 수십 번 쌓았다 허물지만 드러내기는 껄끄러운 부친의 현역 은퇴 이후에 대해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지금처럼 두 곳을 존속시키면서 일주일 중 절반은 이 점방, 나머지는 저 점방을 오가면서 꾸리면 어떨까요?
매상으로나 손님 수로나 세 곱절 이상인 부친 점방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게 상책이겠으나 기틀이 잡히면서 점점 키우는 재미가 쏠쏠한 내 점방도 부친 점방만큼 일으키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부친이 연금처럼 꾸준한 수입을 얻자면 부친 점방을 현상 유지하는 게 지상 과제고, 부친 밑에서 일하는 김군이 제 몫 이상을 해내고 있으니 내가 옆에서 약간만 거들어도 부친의 공백을 어느 정도는 메꿀 거라는 심산이다.
사뭇 야심찬 내 청사진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부친은 말수를 아끼긴 했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다는 눈치셨다. 그럴 만한 게 하루하루 다르게 기력이 쇠해지는 걸 곁에서 보는 아들이 절감하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부친은 은밀하면서도 주도면밀한 당신의 성향답게 물러난 이후를 촘촘히 대비하고 계신지도 모를 일이지만 식당이 소란스러워 진지하게 얘기를 이어갈 분위기가 아닌지라 내 구상을 실현시키려면 선결해야 할 전제 조건을 본인의 의사로 넌지시 전달할 뿐이었다. 첫째,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부친 점방 건물주와 더 이상 공존이 어려워 점방을 옮길 가능성이 농후해서 향후 비상 상황에 민완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점방 두 곳을 오가면서 운영하려면 내 점방에도 김군같이 믿고 맡길 만한 일꾼을 심어 두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내 사람 얻는 게 어디 쉬운가.
듣고 보니 난제였다.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세입자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수족같은 일꾼을 찾는(혹은 키우는) 작업도 만만찮게 지난하긴 마찬가지다. 부친과 가끔 얘기를 나눌 적마다 느끼는 거지만, 급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의 대응은 후하게 표현해서 순진하고 낭만적이지만 너무 안이하고 비현실적으로 낙천적이라 부끄럽다. 면밀한 검토와 착실한 계획을 요해야 하는데도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만용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부친이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구체화시킨 건 유익했다.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지금보다 해야 할 것들이 더 늘겠지만 우직하게 헤쳐 나갈 작정이다.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린 내 숙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