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자에게 식도락을 논하지 말라

by 김대일

점방 주변으로 먹거리가 지천이지만 구미가 안 당겨 잘 안 사 먹는다. 대신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거의 때운다. 퇴근길에 점심거리 재료를 사다가 직접 요리를 하든가 마누라한테 부탁한 뒤 다음날 출근할 때 바리바리 싸 들고 가면 될 일이다.

암만 핫플레이스로 짝자그르해도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끝맛이 개운치 않고 양도 영 시원찮다. 무엇보다 티끌 모아 태산 쌓겠다는 심정으로다가 매일매일 푼돈 여투는 영세업자 주제에 외식에 맛들이다간 볼장 다 보는 수가 있다. 그러니 내 점방을 기점으로 해서 같은 건물에 붙어있는 국수집을, 옆의 옆 건물 돼지국밥집을, 도로 맞은편 감자탕집을 내 식도락에 헌신할 맛의 첨병으로 여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다지 번화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상권 안에서 애면글면, 도긴개긴하는 장사치 동료면 몰라도.

하지만 옆 건물 막국수집은 사정이 좀 다르다. 머리숱도 별로 없는 막국수집 주인 양반이 유난스레 깔끔을 떠는 바람에 점방 개업 이래로 거르는 일 없이 보름마다 꼬박꼬박 이발을 해서 인색하기로 작정한 나도 이대로 무역 불균형이 이어지다간 상도의를 모르는 인간 말종 소리 들을까 두려워 의례적으로라도 막국수를 팔아 줘야 할 판이었다. 문제는 그 집 평판인데 호평보다 혹평 일색인 음식맛 때문에 사 먹기가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다. 동네 토박이라면서 으스대는 손님들 열의 일고여덟이 작당이라도 한듯 그 집 막국수를 먹느니 차라리 인스턴트 메밀소바를 사 먹겠다면서 손사래를 흔들어 대니 어쩌랴. 사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라면서 별일 아닌 일로 몇 달째 끙끙 앓으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게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지간한 나다.

근자에 도시락 싸는 일이 갑자기 귀찮아져서 며칠째 점방 냉장고에 처박아 둔 것들로 끼니를 때우다가 그것도 씨가 마르자 마침내 그제 큰맘 먹고 막국수집 문을 두드렸다. 한참 배달 준비로 바쁜 주인한테 막국수 곱빼기를 주문했더니 5분 내로 직접 음식을 날라 주겠다고 했다.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2천 원을 거슬러 줬다. 곱빼기 값치고는 싼 편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각이며, 백각이 불여일행이라는 옛말 하나 그른 거 없다. 남들이 전하는 평판이란 것이 전하는 자의 주관으로 심하게 오염된 편견덩어리임을 왜 간파하지 못했을까. 일단 제 입에다 음식을 처넣고 맛을 가리는 유물론적 관점으로다가 막국수를 판단하는 게 당연한 맛 감별법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나는 머릿속에서만 막국수를 멋대로 요리하고 자빠진 게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면발은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했으며 육수는 적당하게 감칠맛이 났다. 고명으로 올려진 신 열무는 신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반갑지 않았으나 다행히 몇 조각 안 돼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소한 참기름 향이 신의 한 수였다. 시중에서 파는 참기름 냄새와는 다른 깊이가 묻어나서인지 음식 흡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다만, 곱빼기치고는 너무 박한 양이 몹시 아쉬웠다. 곱빼기 값치고 싸다며 우호적이었던 기조가 철회되는 순간이었다. 곱빼기에 대한 내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그 집 곱빼기가 원래 막국수 곱빼기 정량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국물까지 싹 다 비우고도 입맛을 다시던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8천 원 주고 사 먹기는 아깝다는 거였다. 하여 그날 사 먹은 것으로 그간 막국수집 주인한테 진 마음의 빚을 퉁치기로 제 맘대로 낙착을 봤다. 쩨쩨해도 하는 수 없다. 나에게 식도락을 논하지 말라. 질보다 양이 우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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