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의 마음을 그린 시를 어제 올린 뒤 여운이 남아 몇 자 덧붙인다. 지난 목요일, 휴가 복귀를 앞두고 머리를 깎으러 왔다는 군인은 입대를 앞뒀을 때도 내가 깎아줬다. 작년 이맘때 훈련소 들어간다며 짧게 깎아 달라던 젊은이가 올 10월 전역을 앞둔 상병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고 나는 용케 그를 기억해 냈다. 잊지 않고 찾아준 게 고맙기도 하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해서 근황 묻느라 바리캉 전원 버튼을 괜히 껐다 켰다 했다.
다소 무미건조한 말투로 강원도 양구 21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 중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아들 군대 보낸 아비 심정인 양 짠해졌다. 3군단 예하 12사단과 21사단이 맡은 지역은 155마일 휴전선 중에서도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험준한 산악 지대다. 자칭 산악부대라며 강인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만 험한 데일수록 근무 환경은 열악한 법이다. 강원도 인제군(원통면)과 양구군으로 떠나는 장병한테 건네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다 나으리'라는 위로인지 빈정거림인지 정체 모호한 작별 인사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대해서 거기 보고 오줌 누면 개새끼라고 단단히 작심하는 이들(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의 심정을 알고 싶다면 딱 1년만, 아니다. 굳이 사계절 갈마들이는 수고까지 필요없다. 거기서 가을과 겨울 두 계절만 나도 뼈저리게 공감한다는 데 내 전 재산과 오른팔을 걸겠다.
격오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한다는 젊은이를 보면서 28년 전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에 떨궈져 그 적막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절망하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참으로 희한한 건 그 당시 내 얼굴이나 짬밥이라면 먹을 만큼 먹었을 그 젊은이나 생기 없고 무기력하기로는 도긴개긴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가 선용이나 휴양을 목적으로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거기만 한 곳이 없지만 차꼬를 찬 죄인인 양 위계와 명령에 속박 당한 채 복종해야만 하는 처지로는 제아무리 수려한 산하인들 창살 없는 감옥일 수밖에 없다. 하여 그 젊은이한테서 28년 전 침울해하던 나를 발견하자 나인 듯이 그 젊은이가 한없이 측은해 보인 것이다.
거기서 발붙이고 사는 주민은 선량하기 그지없지만 군복 걸친 자들은 험준한 산세를 닮아 유난히 성마르고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심성이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하여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년에 특히 인사 사고만은 휘말리지 말라고 선험자로서 신신당부했다. 제대하면 다시 꼭 들르겠다는 말로 젊은이는 화답했다. 부산에서 인제, 양구는 여전히 멀고도 막막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