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을 읽는 재미

by 김대일

국어국문학도였지만 학창 시절 그렇게 싫던 '국어학'이 나이 먹을수록 호기심이 증폭되는 분야로 개과천선했다. 사투리와 욕설에 열광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맛을 자랑하는 구어 표현이나 관용 어구에 정신이 팔리며, 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어원을 추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방언론, 화용론, 어학사 따위가 주된 관심사이면서 가리늦게 호모 쿵푸스의 열정을 돋우는 마중물로는 제격이다.

『걸어다니는 어원사전』(마크 포사이스 지음, 홍한결 옮김, 윌북, 2020)은 영어의 어원을 풀어낸 책으로 흥미롭다. 우리나라 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영어 어원이라니 당치도 않지만, 옮긴이의 탁월한 번역 능력을 상찬하는 기사를 한 일간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더군다나 말에 관한 책이니 더 망설일 것도 없었고.

돼먹잖은 서평이나 늘어놓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지은이의 경이로운 박식함과 자칫 따분해질 수 있을 '말'에 대한 얘기를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술술 읽히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 '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무척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한마디로 재미지다는 소리다.

<Strapped for Cash(돈에 쪼들리다)>

우리가 늘 strapped for cash(돈에 쪼들리는) 상태인 건 왜일까요? strapped for cash는 사실 좋은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뭐든 붙들어야 하니, 그때 strap(끈)은 요긴하지요. 물에 빠졌을 때도 누가 strap을 던져주면 다행입니다. 빚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누군가가 strap을 던저준다면 참 고마운 일이지요. 물론 그래도 빚을 진 상태입니다만, strapped for cash면 무일푼보다 나은 상태입니다.

재미있게도 똑같은 발상의 은유가 또 있습니다. 오늘날은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구명줄을 던져줍니다. 즉 throw a lifeline(구제해주다)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그러면 은행은 살아나지만 그래도 strapped for cash 상태이긴 합니다.

한편 bank(은행)는 '벤치'를 뜻하는 옛 이탈리어어입니다. 옛날에는 대금업자들이 시장에 벤치를 놓고 그 뒤에 앉아서 거래를 했거든요. 대금업자가 약속한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벤치를 부수어 못 쓰게 했습니다. '부서진 벤치'를 옛 이탈리어어로 banca-rotta라고 했는데, 거기서 bankrupt(파산한)가 유래했습니다.(위의 책,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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