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에 집을 나서 버스 타는 것까지는 좋았다. 미리 채비를 해 5시 약속에 늦지 않게 당도할 테니 마음이 가뿐했다. 학교까지 절반쯤 와서야 단복을 안 입었단 걸 알아챘다. 군사학 수업이 6시인 줄 몰랐을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맞은편 정류장에 갔더니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서로 먼저 버스를 타려고 멱살잡이를 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버스 기사가 그들을 뜯어 말리느라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요원했다. 절망하던 차에 내가 타려는 버스 번호와 달랐다. 이를테면 나는 17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16번 버스였다. 크게 안도하던 찰나 잠이 깼다.
어제 새벽녘에 꾼 꿈 속의 나는 대학생이었다. 4학년 졸업반인 ROTC 후보생으로 등장했다. 학교에서 5시 약속이 있어서 나왔다가 6시 군사학 강의를 깜빡하고 ROTC 단복을 입지 않아 당황해했다. 5시 볼일을 본 후 다시 집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6시 강의실에 들어가자면 시간이 빠듯해 중간쯤에서 내려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그만 사달이 났다는 내용이다.
배경이 대학교일 때 꿈 속의 나는 늘 곤경에 처해 있다. 학점이 모자라 제때 졸업을 못해 ROTC 소위 임관이 물 건너 간다거나 시험이 코 앞인데 도서관 자리를 못 구해 몰래 열람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가 사서인지 선배인지 책 안 볼 거면 나가라면서 내쫓기는 게 자주 꾸는 유형이다. 이른바 불운의 아이콘인 셈이다. 그에 비해 어제 꿈은 실낱같은 희망이 보여 나은 편이다. 내가 탈 버스 번호가 아니었으니까.
내 대학생활을 글감 삼아 너저분하게 쓸 때가 언제고 있을 테지만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되도록 곤경에 처한 대학생으로 꿈 속을 헤매는 걸 보면 뭔가 단단히 맺힌 게 분명하다. 물론 천금같은 대학생활을 허송세월로 탕진한 건 오롯이 내 방종에서 기인한 바라 입이 있어도 변명이 궁할 수밖에 없겠으나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구나 소망, 갈등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꿈'이라고 한다면 대학교가 배경인 꿈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꿈으로 잘 등장하지 않는 까닭이 그 시절이 내 기억에서 말끔히 표백되어서인지 모른다. 말끔하다는 건 내가 그 시절과 절연했음을 의미한다. 내 무의식에서 단역으로조차 등장하지 않을 만큼 미미하기 짝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역사. 그와는 반대로 대학교 시절이 꿈으로 표상된다는 건 아직도 거대한 미련으로 내 무의식에서 똬리 틀고 있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미련이라…. 무엇이 그리 오래 남아 이리도 마음을 들쑤시는 것일까. 그 정체를 찾으러 심리의 바다를 유영하는 게 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