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들이하는 사이

by 김대일

서로 너나들이하는 사이인 줄 꿈에도 몰랐다. 한 아파트에서 형 동생하며 지내는 이웃사촌이니 따분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네 선술집으로 불러내 소주잔 기울이는 허물없는 사이인 걸 그제처럼 둘이서 어깨를 겯고 함께 점방에 납시지 않았다면 전혀 알 도리가 없다.

두 사람 머리 깎는 주기는 다르다. 그제만 해도 월말께 머리 깎고 염색하는 동생뻘 되는 노인과는 달리 월초에 이미 머리를 다듬은 형뻘 노인은 대기석에 앉아 깎새가 타다 준 다방 커피만 홀짝거리며 동생뻘 염색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으니까.

같은 커트점을 다닌다는 걸 그제 처음 알았는지 모른다. 출타하다 우연히 마주치자 심심하던 차에 잘 되얏다 싶어서 어디 가냐, 그러는 너는 어디 가냐 서로 괜히 말을 섞었을 테고 머리 깎고 염색하러 간다, 내가 가는 점방은 요금도 싸고 깎새 손 놀리는 재주도 제법이다, 내가 다니는 점방도 마찬가진데, 거기가 어디냐, 어라, 거가 건데! 오지랖을 떨다 정답이 일치하자 역시 통하는 구석이 있다며 각자 속으로 기꺼워했을지 모를 일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심정으로 같은 커트점 단골끼리 이왕 이리 됐으니 그냥 헤어질 수 없었는지 동생뻘이 "요 앞 순대집에서 소주 한 잔 때리까요?" 의향을 물으니 "집 근처로 가는 게 어때?" 응수하는 형뻘이다. 안주로 뭘 먹을지는 차차 의견 접근을 보기로 하고 낮술인지 밤술인지 일단 한 잔 때리기로 낙착을 본다.

모르긴 몰라도 오래전부터 도타웠을 리 없다. 일흔을 넘겨 은퇴 생활이 무료해질 무렵 우연찮은 계기로 통성명을 하면서 이만하면 낯 깎이지 않을 위인이겠다 싶어 어울려 다녔을 공산이 크다. 그러고 보니 사는 데는 한 아파트에 터울 질 것도 없이 거기서 거기인 연배며 키는 도긴개긴인데다 주량까지 얼추 오십보백보일 게 뻔하다.

깎새는 만담을 늘어놓듯 능청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중늙은이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몹시 부러웠다. 늙을수록 친구란 가차운 데 있을수록 좋다. 그래야 자주 말동무도 되어 주고 함께 술잔도 기울이니까. 격조하면 죽마고운들 별무소용이다. 노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자면 끊임없이 씨부리고 희노애락을 삭이지 않고 즉시즉시 드러낼 감수성 증폭 훈련을 거르지 않으며 낮술을 마시든 노인일자리를 다니든 활동성을 강화하는 게 중요할 게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 바로 가까운 데 친구를 두고 자주 어울려야 한다는 거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인간이 고결한 존재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일수록 유한성이란 숙명에 맞서 긍지를 잃지 않는다는 것으로 깎새는 받아들인다. 친구랑 재밌게 지내면 늙어도 곱게 늙는다는 소리를 어렵게 꼬았다. 아무튼 두 노친네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처럼 너나들이할 동무를 둘 주변머리가 변변찮은 깎새로선 나이 먹는 게 불현듯 암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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