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한 퇴근길, 아파트 내 화단을 따라 걷는 인도는 사람 둘이 동시에 지나가기에는 조붓하다. 걸리적거리지 않게 지나가려면 둘 중 하나가 비켜서거나 둘 다 게걸음 쳐야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비집고 저쪽에서 걸어오는 실루엣은 손에 든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곧 닥칠 재앙에는 무신경한 채 오직 직진 모드였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인기척을 제발 감지하길 바라면서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이쪽에서라도 대비하려고 전방을 예의주시하면서 걷는다. 5미터, 4미터, 3미터, 2미터, 1미터. 당장 코앞까지 당도했음에도 경로 변경의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자 이쪽에서 선제적으로 옆으로 비키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켜서는 방향으로 돌진하더니 급기야 충돌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건 그 다음이었다. 충돌을 자행한 쪽이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대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한번 까딱거리고는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가던 길 가는 게 아닌가. 고개를 한번 까딱거리는 건 아마도 미안하다는 의사 표시인 성싶었다. 밑지는 장사나 한 것처럼 기분이 너저분하더니 끝내 분통까지 치밀었다.
같은 장소에서 새파랗게 젊은 사내가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 마주 오는 사람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는데 고개만 한번 까딱거리고는 스마트폰에 다시 코를 처박고 가던 길 간다는 해프닝이 며칠 사이 거푸 벌어져 공교로우면서도 황당했다. 새파랗게 젊은 사내는 이른바 MZ세대다. 들이받고도 고개 한번 까딱거리는 의사 표시가 혹시 MZ세대의 핵심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는 '나 자신을 돌보'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당당함일지 들이받힌 쪽은 몹시 궁금했다. 만약 그게 맞다면 그때는 당당하다고 미화할 게 아니라 오만하거나 뻔뻔하다고 적시해야 한다. 꼰대라는 비아냥을 들을지언정 할 말은 해야겠다. 내 실수로 마주 오는 사람을 들이받았으면 그 상대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정중하게 '실례했습니다'나 '미안합니다'라며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의사 표시를 해야 진심어린 사과이면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당당할 수 있다. 그게 진정한 '나 자신을 돌보는' 행동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