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이웃 국수집 이모가 자기는 개업한 지 6년이 넘도록 피치 못할 집안 중대사가 아니면 단 하루도 점방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극강의 성실성을 과시했었다. 신출내기 깎새한테 점방의 운명은 꾸준함에 달렸다고 에둘러 훈계를 한 셈이다. 그리 자랑 삼아 훈수 두던 이모가 변했다. 요 몇 달 사이 허파에 바람이 단단히 들었는지 점방 문 닫은 날이 허다하다. 토요일, 일요일 쉬는 건 예사고 평일에도 해 넘어가자면 한참이지만 미련없이 자리 털고 가 버리기 일쑤다. 선글라스로 한껏 깔롱을 지기고 어딜 그리 총총히 가는지 모르겠지만 불과 1년 전 그녀가 힘주어 강조했던 성실성과는 거리가 한참 먼 행동거지다.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그녀와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월요일만 쉬고 새벽 5시부터 장사 준비를 하는 울 동네 김밥집에서 한때는 김밥을 자주 사다 먹었었다. 6시 전후로 집을 나서 김밥집 앞을 지날라치면 삼각 간판틀 문구가 '영업종료'에서 '영업중'으로 막 바뀌어 있다. 곧장 들어가 요즘 경기에 무척 착한 가격인 한 줄에 2,200원하는 김밥 세 줄을 사면 천하를 얻은 느낌이다. 싼데다 먹을 만하고 양까지 넉넉해 끼니 때우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닌 나로서는 최고의 요깃거리였다. 40대로 추정되는 부부가 운영하는 김밥집은 인근에 그만한 가격과 맛으로 대적할 김밥집이 별로 없어서 낮에는 성황을 이룬다. 재료가 소진되면 얄짤없이 문을 닫는 베짱은 거기에서 기인한다. 그런 김밥집이 요 몇 달 사이 '영업중'이란 문구가 바뀌어야 할 시간에도 '영업종료'라는 문구를 완고하게 고수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판매량이 미미한 새벽 장사보다는 줄 서서 기다리는 낮 장사에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각이 아니면 김밥을 사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불규칙한 영업 기조로 인한 희생양이 된 듯 섭섭하기 그지없다. 가끔 예전처럼 내 출근시간에 맞춰 '영업중' 문구로 바뀌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사 먹지 않는다. 일관성이 의심된다는 건 빈정이 상했다는 다른 표현이다.
일관성이란 단어를 늘 곱씹는다. 초지일관은 무서운 말이다. 한결같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얽어맬 때는 그만큼 모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은 고되지만 모진 만큼 토대가 안정적으로 마련될 여지는 충분하다. '저 친구는 변함없어'란 인식만 박히면 그 뒤로는 순풍에 돛을 단 거나 다름없으니까. 문제는 공고한 일관성을 최종적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언제냐는 거다. 1년이니 10년이니 하는 객관적인 시점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게다가 상대하는 전부를 감싸 안을 정서의 일관성이 불가능하다면 일관성 구축을 위한 나의 노력을 경시하는 태생적 딴지주의자들을 구슬리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겠지만 그게 무엇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책이란 그저 쉬는 화요일은 칼같이 쉬고, 영업일에는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손님 뜸하다 싶으면 오후 6시40분 회전간판 불을 끄고 마감을 준비한 뒤 7시30분 문을 닫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