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뭉쳤다

by 김대일

명절 연휴 아닌 날 가족이 다 모여 느긋하게 만찬을 즐기기는 내가 점방을 개업한 이래로 그제 현충일이 처음이었다. 공휴일이라서 쉬는 마누라, 화요일이 쉬는 날이라서 쉬는 나, 일시적으로 오후 근무가 오전으로 바뀐 큰딸, 오전 훈련 마치고 오후 1시쯤 귀가한 막내딸까지 네 식구는 큰딸이 퇴근하는 3시에 맞춰 다같이 스시를 부페식으로 내놓는다는 곳으로 가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즐겼다. 가격에 비해 음식 질은 별로였으나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함께 밥을 먹는 말 그대로 식구食口라는 정체성을 재확인한 소소한 감격만으로도 지불한 비용보다 몇 배는 더 값지다.

거북해진 위장을 산보로 달래려고 근처 광안리해수욕장에 들렀다. 자칭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불쇼를 벌인다는 마술사의 버스킹을 구경하거나 광안대교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면서 해변길을 1시간 가량 걸은 뒤 예쁜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공휴일을 예쁘게 마무리하기로 낙착을 보고 집 근처인 송정 구덕포 카페거리로 향했다. 찻값의 대부분이 바다 경치 프리미엄인 양 별맛 없는 차를 들이켜던 중에 일전에 마누라가 큰맘 먹고 밀어붙인 올 여름 제주도 2박3일 가족여행 일정에 이견이 생겨 옥신각신했다. 먼저 큰딸은 녀석이 근무하는 휘트니스클럽의 연중 가장 성수기가 딱 그 시기라 휴가 내기가 영 눈치가 보인다며 한발 슬쩍 뺐다. 막내딸은 그 즈음 펜싱 시합이 열릴지 모른다며 물음표를 달았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왕 칼을 뽑아들었으면 무라도 썰자는 심정으로 여행 일정을 추석 연휴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나와 머리 맞대고 조율했다.

추석 당일 부모님과 식사는 해야겠어서 오전에 본가 들렀다가 오후에 제주도로 뜨자는 내 의견은 네 부모만 부모냐 명절이랍시고 음성 시골 장모한테 한번이라도 찾아가 뵌 적 있냐는 마누라 대거리에 바로 묵살되고 말았다. 모처럼 짬을 내 가족 여행이란 걸 가보겠다는데 그걸 이해 못 하실 노친네들이 아니니 미리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고 넓디넓은 제주도를 2박3일 일정으로 일주하자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도 시원찮을 판이라는 마누라 주장은 그런대로 설득력이 다분했다. 다만 슈퍼태풍 마와르로 초토화가 되는 바람에 취소된 괌 여행을 대신해 마누라 계꾼들은 필리핀 세부로 여행 계획을 다시 잡았는데 그때가 추석 연휴 다음 주, 그러니까 한글날 연휴로 이어지는 주말이라는 게 좀 걸린다. 두 주에 걸쳐 연달아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마누라 회사에서 맡은 업무라는 게 10월 전후가 가장 바쁘고 잔무가 폭증할 때라는데 그걸 여행 전에 다 소화해낼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큰딸이 대안을 냈다. 비행기 티켓과 숙박 예약을 8월 휴가철, 추석 연휴 둘 다 잡아놓고선 일정 봐가면서 살려둘 것과 취소할 것을 결정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럴듯해서 모두 동의를 했고 짧은 난상토론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한 집에서 얼굴 맞대고 의식주를 해결한다 해도 막상 일정을 통일하는 게 쉽지 않을 만치 식구들 각자는 분주하다. 이런 구도는 아이들이 점점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고착화될 공산이 크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면 식구들끼리 되도록 자주 얼굴 맞대고 살 부비는 돈독한 풍경을 연출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국내로 떠나는 가족여행 일정조차 산고 끝에 겨우겨우, 그것 마저도 잠정적으로 잡는 풍경이 썩 나쁘지 않다. 고진감래라고 했다. 어렵사리 뭉칠수록 기꺼움은 더할 테다.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보다 더 간절하게 여기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말란 법 없다. 화요일이자 공휴일인 현충일에 모처럼 네 식구가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낸 여운이 오래가는 게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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