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짜리 지폐 경제학

by 김대일

시재로 20만 원을 항상 준비해 두는데 1천 원권, 5천 원권, 1만 원권 지폐 비중이 1 대 6 대 3 정도다. 커트 요금이 5천 원이다 보니 1만 원짜리 지폐를 내는 손님이 많아 거스름돈으로 낼 5천 원짜리가 특히 많다. 그런데 근래 5만 원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결재용으로 5만 원짜리 지폐를 내는 손님이라고는 일주일 가봐야 한 명 될까 말까였는데 하루에 한 명, 어쩔 때는 두세 명까지 5만 원짜리를 내놓는 바람에 가끔 1만 원 수급에 애를 먹는다. 일꾼이 더 있으면야 환전이 일 축에도 못 끼겠으나 깎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형편이라 1만 원짜리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지 가뜩이나 손님까지 밀려 있기라도 하면 참 난감하다. 일 같지도 않은 일로 불편해할 건 뭔가 싶어 시재 말고도 추가로 십수만 원을 아예 1만 원짜리로만 장만했다.

엊그제 통화 중에 5만 원짜리 지폐가 부쩍 늘지 않았냐고 부친이 물었다. 점방에 CCTV가 달린 것도 아닌데 어쩜 그리 점방 사정에 밝은지 순간 섬뜩했다. 부친 왈, 근자에 5만 원짜리로 결재하는 손님이 왕왕 있는 게 비단 내 점방만 그런 건 아니랬다. 여유로울 때는 소액권으로도 충분히 일상적인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지만 불경기가 이어지면 주머니 사정이 시원찮아진 사람들이 지갑 속에 꼭꼭 감춰 두었던 꼬깃꼬깃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고야 마는데 요즘이 딱 그 시기라는 거다. 5만 원짜리가 일종의 경기 바로미터인 셈이다.

비상금조로 쟁여두기에는 부피로 보나 물신성으로 보나 5만 원짜리 지폐가 독보적이긴 하다. 하지만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고 금전 거래도 어지간해서는 실물이 아닌 은행 간 이체로 이뤄지는 일이 더 편한 요즘 세상에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가 나오고 아니고로 경기를 판단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발상같다. 또 정말로 살기가 빠듯할 지경에 몰리면 불요불급한 것에 대한 지불을 일단 유예하고 보는 게 통상의 인정이다. 불편하지 않으면 두어 달 혹은 서너 달 안 깎아도 된다고 여기는 이발이 대표적이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장사 사이클의 호불황을 동물적 감각으로 짚어내는 부친을 존중해 무릎을 칠 만한 탁견이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과연 5만 원짜리 지폐가 소시민의 경제 활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갸우뚱한다.

다만 최소한 깎새의 세계로 한정한다면 불황의 센바람이 지배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지갑이 옅어졌는지 고급 염색하던 손님이 일반 염색으로 갈아타고, 커트와 두피마사지를 겸했던 손님은 다음에 하겠다는 공약만 남기고 커트가 끝나자마자 얼른 옷 추스르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님 수는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지만 실질 매상은 답보 내지 하락 추세로 꺾여 좀 답답하다. 월세니 공과금 따위 차포를 다 떼고 손에 쥐는 게 좀 묵직해져야 장사에 더 재미를 붙일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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