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시를 포개다

by 김대일

만약 점방 내부를 장식할 액자에 뭘 넣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없이 정현종의 <방문객>을 선택하겠다. 이 시는 장사치한테 가장 최적화되었다고 감히 확신한다. 일단 쉽게 읽혀진다. 쉬운 만큼 시는 점방을 찾은 손님을 대하는 장사치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적으로 잘 표현했다. 시인이 설마 문전성시를 바라는 장사치의 절실함으로 시를 썼겠냐마는 어쨌든 손님과 늘상 마주해야 하는 장사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조타하는 길라잡이로써 시는 안성맞춤이다.

점방 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온다. 자리에 앉힌 뒤 작업 전 잠시 액자 속 시를 되뇌인다. 그러고선 눈앞의 손님을 되뇌이는 시에 살포시 포개겠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내가 바른 새치 염색약을 씻어 내기 위해 샴푸를 기다리는 한 중년 남자의 머리통을 나는 지금 보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남자의 갈피를 더듬어 보려고 무진 애를 쓴다.

내 점방을 찾기 전 남자의 단골 점방은 어디였고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잘 다니던 점방을 놔두고 내 점방으로 갈아탄 연유가 무엇일지 궁금한 게 그 남자의 과거이고,

한달 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 도포한 염색이 더 감쪽같은지, 염색부터 샴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갈수록 세련되고 능숙해졌는지, 하여 손님의 평가가 후한지 박한지 그것이 몹시 궁금한 게 남자의 오늘이며,

행여 점방 임대차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근처 다른 데로 옮긴다고 가정했을 때 남자는 예전처럼 새로 옮긴 내 점방에 매달 빠짐없이 들러 커트와 염색을 할 것인지, 창졸간에 발길을 뚝 끊어 버린 손님을 재유인할 방법이 무엇인지 골몰하게 하는 건 남자의 미래다.

점방 문 열고 들어오는 방문객의 갈피를 더듬어 볼, 아니 더듬어 보는 흉내만이라도 낼 줄 알면 망할 리는 없겠다. 나아가 '우리 동네 싸고 잘 깎는 점방'으로 환대받는 호사를 누릴지 모를 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 따로 몸 따로 노는 게 문제라서 그렇지. 오묘한 상술의 세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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