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그러모은 탯말(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운 말) 사전이나 토박이말을 흐벅지게 담은 우리말 사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문학평론가 겸 수필가의 칼럼을 어제 읽었다.(김정화, <사전을 읽다>, 국제신문, 2021.07.05)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치고 말과 글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특히 없는 말을 지어내는 사람 중에서 낱말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 지구란 별을 '허공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이라고 표현한 시인처럼 그들이 사용하는 낱말은 접신이라도 되는 날이면 한순간에 우주 공간으로 솟구쳐오르듯(한창훈,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문학동네, 12쪽) 일반적인 우리의 언어 세계를 초월한다.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글 한 꼭지 써보자고 끌탕을 할라치면 남보다 멋드러지고 도드라져 보이는 낱말이나 구절을 동원해 티를 팍팍 내고 싶은 욕구가 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상투적이고 천편일률적이란 소리는 마치 얼굴에 뱉은 침인 양 그렇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가 없다. 안 쓰면 안 썼지.
말로써 글맛을 살리자면 사람들 입맛을 당길 만한 낱말이나 구절로 바꿔 배치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겠다. 그러자면 뜻이 서로 비슷한 유의어를 많이 알아 두면 좋겠지. 또 관용구나 속담 따위를 적절하게 끼워 넣어 심심한 문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도 있겠다. 방법은 알았는데 그럼 그 많은 유의어, 관용구, 속담 따위는 어디서 구해다 쓴담?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전 읽기'가 가장 용이할지는 몰라도 내가 경험한 가장 재미없는 짓이다. 사전 페이지를 씹어가면서 낱말을 외웠다는 작가도 있다지만 내 머리로는 가랑이 째지기 십상이고 무엇보다도 너무 미련해 보인다.
이왕 어휘력 수집을 목전의 프로젝트로 작심했다면 나는 소설 「임꺽정」을 읽고 거기에 지천으로 널린 우리말을 거둬서는 필사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임꺽정」 으로만 따로 글 쓸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주옥같은 우리말이 쌔고 쌘 데다 재미까지 끝장인 소설이야말로 우리말 교과서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게다. 좌우당간 책 옆에 대학 노트를 두고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낱말, 읽을수록 그 맛이 우러나는 구절, 문장을 닥치는 대로 써본다. 막 써재낄 때야 이 세상 숨은 말들을 다 찾아 내가 독차지한 듯 부자된 기분이지만 막상 글 쓸 때 써먹으려고 하니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어서 허탈하면서 의아했다.
필사를 하면서 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라 입으로 터져 나오도록 체화되어야지만이 내 말이 되는 거고 내 글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홍명희라는 문호도 대단하지만 그 양반의 글을 사전 따위 의존하지 않고 고스란히 읽어내려간 당대의 사람들 또한 대단한 언어 능력을 가졌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임꺽정의 한 대목.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말 중에서 당신이 그 뜻을 알 만한 게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 보시라.
미련은 곰새끼구 우악은 억대우구, 오주가 우멍한 눈을 끔벅끔벅하는 걸 보면 나는 언제든지 탑고개에서 뜸베질당하던 생각이 나네. 사람치구 그따위 무지하구 미욱하구 용통하구 데퉁궂구 열퉁적구 별미없구 변모없는 위인을 우리 사위 양반은 무엇에 반했는지 처음부터 이날 이때까지 꼭 데리구 들어온 자식 두남두듯 속살루 은근히 두남두느라구 애를 부둥부둥 쓸 때가 많으니 그게 아마 전생에 오주의 빚을 지구 이생에 와서 갚는 모양이야.
• 우악(하다)~미련하고 험상궂다/무지하고 포악하며 드세다
• 억대우~매우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소
• 우멍하다~(눈) 물건의 바닥이나 면 따위가 납작하고 우묵하다
• 뜸베질하다~소가 뿔로 물건을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짓을 하다
• 미욱하다~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다
• 용통하다~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
• 데퉁궂다~(사람이 그 말이나 행동이) 매우 거칠고 엉뚱하며 융통성이 없다
• 열퉁적다~말이나 행동이 조심성이 없고 거칠며 미련스럽다
• 별미없다(별미쩍다)~말이나 행동이 어울리지 아니하고 멋이 없다
• 변모없다~남의 체면을 돌보지 아니하고 말이나 행동을 거리낌없이 함부로 하는 태도가 있다
• 두남두다~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 속살~겉보기로는 모르는 실제
• 부둥부둥~퉁퉁하게 살이 찌고 부드러운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