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드립니다

by 김대일

'츤도쿠(積ん読)'란 말이 있다. '책을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우리말의 '장서가'나 영어 '비블리오마니아'와는 그 결이 좀 다르다. 책을 소장하기는 하나 '노골적으로 읽지 않는' 의미가 더 강하게 부여된 단어로는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란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읽지도 않는 책을 쌓아두는 이유 중에서 멋있게 보이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나. 그 단적인 예를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에서 찾곤 한단다. 캐롤라인 빙글리가 말하는 대목, "독서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집을 지었는데 거기에 훌륭한 서재가 없다면, 오! 얼마나 끔찍할지"는 그녀의 허영기를 잘 표현한다. 실제 캐롤라인은 책 읽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신현호, <차트 읽어주는 남자-책과 아이의 미래>, 한겨레, 2018.11.17.)

흥미로운 건, 집에 책을 쌓아두기만 해도 아이들 인지능력이 개선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소득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다. 호주와 미국 경제학자들 분석에 의하면 청소년기 책에 노출되는 것은 언어능력, 수리능력 및 기술문제 해결 따위 인지능력 발전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이탈리아 경제학자들은 유럽 남성 노인을 대상으로 책 보유량과 소득에 관한 분석을 시도한 바 책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소득상승 효과가 4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위 칼럼)

설령 '츤도쿠'가 부모의 허영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책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이 개선되고 어른이 된 뒤의 소득이 높아진다면 꽤 괜찮은 투자가 아니겠냐는 필자의 너스레에 한껏 고무된 게 사실이다. 중고서점, 중고책 온라인을 누비며 사들인, 사놓고 물론 안 읽은, 책들이 집 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보니 안 그래도 좁아 터진 집구석을 더 비좁게 만든다는 마누라 지청구를 온몸으로 받아내지만 훗날 장성한 두 딸내미가 '저희가 이렇게 남부럽지 않게 자란 건 아버님께서 대중없이 마구 사다들인 탓에 자꾸 거치적거리던 중고책들 덕분입니다'라는 공치사를 기대해볼 만한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겠다.

허나 널찍한 서재가 들어갈 집으로 당장 이사갈 게 아니면, 회사 관두고 집안 일에만 매진 중이신 마누라 등쌀이 크게 작용했다고 꼭 말하려는 건 아니고, 자리만 차지하는 책들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이젠 정리할 때가 됐다. 특히 작년 봄에 내 생애 처음 낸 책 「일상」(새로운사람들, 2020)은 무더기로 책장 한 칸을 다 잡아 먹고 있다. 내 발로 내 책 내겠다고 출판사를 찾았으니 인세받을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쪽 관행인 듯 선인세 명목으로 받아둔 책이 백여 권이었다. 땡처리하듯 안면만 있다 싶으면 책부터 들이밀었음에도 아직 수십 권이나 남았다. 암만 내가 용을 써 지은 자식같은 책이라고 해도 처치 곤란하면 애물단지나 진배없다.

혹시 필요한 분은 등기료만 받을 테니 말씀만 하시라. 몇 권이든 보내드릴 테니. 단 재고 소진 시 없던 일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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