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 딴지 걸기

by 김대일

영화평론가 김도훈이 SNS에 올린 이효리 저격글이 논란인가 보더라. 글은 벌써 삭제시켰다는데 갑론을박이 여전히 시끄럽다. 김도훈이 쓴 글을 대충 옮기면 이렇다.


“나는 이효리가 요즘 좀 안타깝고 안쓰럽다. 김태호랑 과거 울궈먹기 예능만 몇 년째 하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 예능은 하면 할수록 잊혀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과거의 스타같은 느낌만 더 강해질 뿐이잖아”

“이효리는 젊고 흥미로운 프로듀서 작곡가들을 모아서 동시대적인 음반을 낼 역량과 영향력이 충분한 아티스트 아닌가. 정말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계속 추억팔이 예능만 하고 있는 이 상황에 오랜 팬들이라면 ‘언니(누나) 예능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워요’라고 할 게 아니라 짜증을 내는 게 옳다”

“전성기 인기를 회복하지 못해도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업데이트하며 음반을 내는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와 제이로의 길을 참고해야 한다”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인 '댄스가수 유랑단'에 참여한 이효리를 두고 한 말이다. 이효리는 이 프로그램 말고도 김태호PD와 MBC에서 '싹쓰리', '환불원정대'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재현한 적이 있다.

김도훈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나로서는 이효리를 저격하기보다는 오히려 '추억팔이' 예능으로 손쉽게 인기에 영합하려는 김태호PD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려는 혐의가 짙은 글이라고 본다. 한때 '무한도전'이라는 신박한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누렸지만 점점 퇴행적인 프로그램 기획만을 일삼는 김태호PD는 냉정하게 보자면 감이 이미 떨어졌다. 옛날 노래, 옛날 이야기를 현재 감각으로 잘 포장해 시청자들한테 내놓으면 먹힐 만하다. 세월을 거슬러 관록과 노련미로 재무장해 과거보다 더 멋진 뮤즈로 업그레이드한 스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제 살 깎아 먹는 줄 모르고 우려먹다간 감탄고토에 기민한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다. 혹 생길지 모를 그 사달의 중심에 하필이면 이효리가 제일 도드라져 보여서 객쩍게 욕바가지 신세가 되어 버린 게다. 비슷한 포맷인 쇼에 매번 똑같은 셀럽이 나와서 제 히트곡을 무한재생으로 불러제낀다면 옛날사람 취급을 받는 나라도 질려서 주저없이 채널을 돌리겠다.

세상이 요지경이라 TV를 켜면 tvN 채널만 고수하는 내가 어쨌든 근자에 예능프로그램을 자주 접해 어쭙잖은 안목 같은 게 생겨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예능프로그램을 꾸리는 PD만큼 극한직업도 없겠다 싶다. 더 새롭고 더 재밌는 걸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자니 어지간한 착상 가지고는 도저히 버터낼 재간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잘나갔던 PD가 예전 히트작의 총론은 고수하고 각론만 살짝 손을 댄 아류작을 내놓는 것도 모자라 사골 육수 우려내듯 아류의 아류를 전전하는 게 신기루처럼 부질없는 인기에 연연해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연상되는 기회주의적, 보신주의적 발상이 스스로를 옥죄는 멍청한 짓인 줄도 모르는 채 과욕을 일삼으니 안타깝기도 하고. 더는 기발한 기획이 안 떠올라 한계를 절감한다면 차라리 참신한 신예에게 바통을 넘기는 건 어떨까. 힘센 조력자로 후광이 되어 준다면 오히려 그 권위가 더 살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예능은 조로가 일찍 찾아오는 분야다. 재미없다라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순간 영화로왔을 커리어조차 이미 구닥다리 신세로 전락해 버린 뒤다.

이왕 딴지를 걸었으니 하나 더. 토요일 저녁에 본방이 나가고 일요일 아침 8시 경부터 재방송을 무려 2시간 가까이 내보내는 KBS2 '마이 리틀 히어로'라는 프로그램은 'HERO - in Los Angeles’(아임 히어로 인 로스앤젤레스) 공연과 함께 촬영한 것으로, 콘서트를 준비하는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의 모습부터 솔직 담백한 면모까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채로운 임영웅의 매력을 담아냈다'는 기획 의도로 트로트 가수인 임영웅 단독 리얼리티 예능이다.

국민이 낸 수신료로 방송을 꾸리는 이른바 공영방송사라는 데서 일개 트로트 가수만 단독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주 주말 저녁시간대에 2시간 가까이 편성한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임영웅이라는 자가 한 종편 트로트 경연대회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해 다른 경쟁자를 압도하는 발군의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그 독보적인 가창력으로 인생의 허무감에 빠진 채 우울증으로 시름시름 앓는 숱한 중장년 누님과 형님들을 구원해줬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트로트 가수라서? 그도 아니면 그를 추종하는 팬덤에 기대어 알량한 시청률 장사를 해보겠다는 꼼수에서 비롯되었을까? 만약 그가 현존하는 최고의 가수라서 그를 추앙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한다면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는 다른 나라의 가왕이고 여제인가. 임영웅이 아니면 안 될 본질적 이유가 무엇일까. 가뜩이나 수신료 내기 아깝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주말, 주일 알짜배기 2시간을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보다 노래를 알면 얼마나 알지 의문인 아직 새파랗게 젊은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 현장을 보느라 허비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하다. 가수 콘서트하는 장면을 매주마다 2시간씩 꼭 봐야 할 합당한 이유를 대서 내가 인정할 만하다면 그날로 즉시 임영웅 팬클럽에 가입하겠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이 공영방송일진대 만약 내 짐작대로 시청률 꼼수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라면 방송국 놈들 스스로 그들의 위상을 추락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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