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퇴근길 전철 간이었다. 요행히 출입문쪽 가장자리 좌석에 앉아 노곤한 몸을 달래던 중에 환승역인 서면역에서 가벼운 등산복 차림을 한 남녀가 곁에 앉았다. 둘 중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은 남자인데 그나 나나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맨다리가 슬쩍슬쩍 닿일 때 전해지는 열을 잔뜩 품은 이물감은 영 달갑지 않았다. 전철 안은 냉풍이 불어 쾌적했지만 다른 사람의 체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고 예민했다. 한쪽이 막힌 맨 가장자리에 앉아서 운신의 폭이 일방향적일 수밖에 없는 나는 남자의 맨다리와 닿지 않으려고 왼다리를 오른편으로 불편하게 기울였건만 남자는 그의 양다리가 점점 쩍쩍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바로 옆 여자와 이야기하는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도 역시 나를 모른다. 그런데도 불현듯 내 옆에 앉은 그 남자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고 쩍 벌어진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을 쉽사리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당한 증오가 과연 나만의 전유물이었을까. 남자는 남자대로 산행으로 지친 육신을 시원한 전철 간에서 달래보려다가 생면부지의 반바지 차림 열덩어리에 직면해서는 진절머리가 안 났다고 누가 장담하랴.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고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을 여름 징역 못지않게 한여름 37도 열덩어리들이 부대끼는 전철 간에서 절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