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우산공제 잡담

by 김대일

직장인으로 치면 개인 퇴직연금 같은 '노란우산공제'를 가입했다. 자영업자가 폐업을 하거나 늙어서 더 이상 점방을 꾸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 미리 마련해 두는 일종의 퇴직금이라고 보면 된다. 소득공제니 운영주체가 내세우는 다양한 복지 제공 혜택에 구미가 당긴 건 아니었다. 한 달 벌어 차포 다 떼고 수중에 얼마 안 남는 돈으로 먹고 마시는 데만 쓰는 꼴이 너무 소모적이어서였다. 나름 타산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 충족의 일환이랄까. 국민연금도 다음달부터 내기로 했다. 점방 개업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공단에서 돈 내라고 독촉을 해대는 걸 애써 외면하다가 나이 들어 남는 건 국민연금밖에 없다는 마누라 등쌀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백기를 들었다.

장사를 재미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오로지 돈만을 좇아 밤낮없이 매달리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그래서 너무 아깝다. 손님 중에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합해 제법 두둑한 월 수령액을 자랑 삼아 밝히는 이는 마치 돈 걱정 없이 유유자적하게 지낼 말년을 위해 내 청춘 다 바쳤다는 식의 자해성 고백까지 거침없이 늘어놓아 적잖이 놀랐다.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한 극적 표현인 줄은 알겠는데 썩 달갑지가 않았다. 유유자적한 인생을 왜 꼭 말년에 가서야 누려야 할까. 한 살이라도 더 젊어서부터 속박없이 편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꼭 골을 넣어야지만 축구가 재미있고 주자가 홈을 밟아 점수를 따야지만 야구가 흥미로운 게 아니잖는가. 연금 많이 받는다고 으스대는 노인을 보면서 혹시 우리가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이다. 기본소득이야말로 공고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약간이라도 허물어 숨통을 트이게 하는 건강한 틈입이다. 혹자는 공짜돈이 생기면 일하지 않고 딴짓거리를 일삼을 거라면서 기본소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아 보다 안정적이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반박이 그 위험성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는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고 이 나라는, 이 정부는 시민 모두를 동등하게 보듬어 줄 충분한 곳간을 보유하고 있다. 귀한 세금으로 공적자금 운운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그 돈만 가지고도 시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단 말이다.

상상해보라. 우리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만큼의 소득이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꽂힌다면 당신은 무얼 할 텐가. 말로만 듣던 '오마카세'를 즐겨볼 텐가. 그러시라. 두서너 달 안 쓰고 모았다가 남들 다 가봤다는 제주도, 아니 동남아 여행을 떠나볼 텐가. 당연히 그러시라. 빡빡하기 그지없던 이전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꿔 봤을 골프, 필라테스, 요가 따위 뭐든 상관없이 레저를 즐길 작정이신가, 얼마든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돈의 노예로 담보 잡혀 말년까지 이연시킬 까닭이 전혀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져야지 참 행복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런 행복을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 인간다운 것이고.

노란우산공제 얘기 하다 기본소득이 튀어나왔다. 대중이 없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 욕구가 낮아진다거나 늘어난 소득을 단순히 쾌락을 위해 소비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고)노동시장에서 이탈한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인생을 예술가처럼 산다고 해도 전혀 나쁘지 않다. 기본소득 실험의 취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롤스로이스 같은 사치품을 향유하도록 하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은 그저 기초 생활을 영위하고 약간의 저축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수입일 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늘 그들이 꿈꿔왔던 의미있는 일에 나서지, 마약을 흡입하거나 비디오게임에 심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자본주의'를 되묻다 인터뷰에서 (20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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